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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구루 Sep 21. 2022

장엄한 그랜드 캐년과 에너지의 도시 세도나

Part2. 여행자의 시간 I : 겨울에 떠나는 미국 서부 로드 트립



가족 모두 피곤했는지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얄궂게도 새벽까지 쏟아질 듯 내리던 폭설은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정강이까지 쌓여있던 눈도 제설차의 빠른 작업으로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밤을 떠올리며 언제 또 폭설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오늘은 대망의 그랜드 캐년으로 가는 날, 미국의 국립공원 중 가장 인기 있는 국립공원이니만큼 큰 기대감을 안고 방문한 그랜드캐년에는 지난밤의 폭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세계 7대 자연경관다운 장엄한 풍경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서연이는 손이 시리지도 않은지 아빠와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많은 관광객이 다니는 길목에 세워 두었다. 제 손으로 만든 눈사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니 뿌듯해하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난밤 목숨 걸고 찾아온 그랜드 캐년을 그대로 두고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기념품 가게에서 그랜드 캐년을 배경으로 한 동화책 두 권을 구입해 나왔다. 언제가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이가 이 책을 펼칠 때면 눈 덮인 오늘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 목적지인 세도나로 향했다.



 


세도나가 가까워지자 지금까지의 풍경과는 다르게 아기자기한 모습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의 성지였다는 이곳은 독특한 모양의 붉은 바위산 ‘벨락’이 영적 볼텍스를 발산한다고 하여 명상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세도나에 오면 꼭 방문해야 하는 명소라고 하는 만큼 우리도 Airpot Mesa라고 하는 ‘벨락’ 근처의 트레킹 코스를 걸어 보기로 했다. 최근에 비가 내렸던 건지 가는 길이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것은 물론 한 번 빠진 발을 다시 떼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진흙의 압력도 대단해서 신발은 물론 하의까지 흙투성이가 될 정도였다. 험난한 길을 견뎌내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13살인 초코는 길이 험난해 가고 싶지 않았던지 걸음을 떼지 않고 자꾸만 몸에 힘을 주어 버티며 거부 의사를 비추기에 다시 차에 데려다 놓고 마음이만 동행해 트레킹 코스로 들어섰다. 진흙투성이 길이 너무 힘들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언제 또 이곳을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꾹 참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세도나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미국에서 보낼 여정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벨락의 에너지를 품고 다시 온 길을 되돌아왔다.  



세도나에서 묵을 숙소는 3대째 가업을 이어 운영해 오고 있는 마을의 작은 호텔이었는데 요가, 그림 그리기 등 아기자기한 이벤트가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날 저녁, 유화 그림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기에 아홉살 아이도 참여 가능한지, 공석이 있는지 문의하니 가능하다고 하여 아이의 이름으로 클래스를 등록했다. 클래스에 참여한 대부분은 성인이었지만 아이는 제법 진지한 눈빛으로 집중해 자기만의 작품을 완성해냈다. 클래스가 끝날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니 여행 중에 보았던 사막 위의 선인장이 하얀 캔버스에 완성되어 있었다. 아이의 그림 덕분에 우리가 함께 보았던 이번 여행의 한 장면을 간직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그림을 그리며 아이의 마음속에도 드넓은 사막과 각기 다른 모양의 다양한 선인장들, 시시각각 빛을 바꾸던 해질 무렵의 하늘들이 선명하게 기억되었기를 바랬다.



<에어포트 정상에 선 남편과 마음, 캔버스에 사막을 담아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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