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여행자의 시간 I : 겨울에 떠나는 미국 서부 로드 트립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호간의 아침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길 다음 행선지는 모뉴먼트 밸리. 모뉴먼트 벨리로 가는 길에는 아기자기한 명소들이 많아 이동하는 동안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이름처럼 구부러진 거위의 목과 같은 모습을 한 구스넥 주립공원, 멕시칸의 모자를 연상시키는 멕시칸 햇 등 여행책자에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은 귀여운 이름의 명소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이 날은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모뉴먼트 밸리 주변을 구경한 후 새로운 숙소에서 호간에서 쌓인 피로를 풀기로 하였기에 욕심부리지 말고 숙소로 가자며 핸들을 돌리는데 도로에 많은 차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뭔지도 모르고 본능적으로 우리도 차를 따라 세웠다. 알고 보니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검프가 달리기를 멈춘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어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모뉴먼트 벨리의 높이 솟은 바위산을 배경으로 광활한 대지를 가르는 길고 좁은 도로가 꽤 멋져 보였다. 다른 차량들을 보지 못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길이었는데 운 좋게 우리도 발자국을 찍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앞서 온 다른 사람들이 사진 찍기를 기다렸다 우리도 기념사진을 찍고 걸음을 뗐다.
이내 도착한 숙소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신라면을 끓여 햇반을 말아먹었다. 그제야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아홉 살 어린이도 “맛있다!”를 연발하며 열심히 제 그릇을 비웠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날엔 특별한 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이틀 전 헤어졌던 호간의 호스트 Richardson과 함께 엔텔로프 캐년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엔텔로프 캐년은 나바호족 인디언의 투어를 통해서만 방문이 가능했기에 Richardson을 통해 투어를 예약했는데 2시간짜리, 3인 투어 가격이 412$ 로 한화 50만원에 달할 만큼 꽤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를 여행의 한 페이지에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 큰맘 먹고 예약을 했다. 엔텔로프 캐년은 강물이 바위를 지나간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동굴로 전 세계의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촬영을 위해 꼭 한 번 찾을 만큼 사랑을 받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는 Richardson과 함께 온 여성의 차량으로 배정되어 투어를 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Richardson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어렸을 적 엔텔로프 캐년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고 했다. 동굴의 구조가 구불구불하고 미로처럼 생긴 탓에 숨바꼭질에 빠져 집에 오지 않는 아이들을 찾으러 오신 아버지가 숨어있던 아이들을 찾는데 애를 먹곤 했다며 호탕하게 웃는 그녀였다. 이틀 전 우리가 호간에서 묵었다고 하니, 실제로 그녀가 어렸을 적엔 호간에서 생활을 했다며 40년 전에는 호간 주변에 양을 수십 마리 기르며 양털을 깎아 이불과 러그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는 말도 보탰다.
도착한 엔텔로프 캐년 내부에서는 Richardson 이 가이드를 해주었는데 동굴 내부의 바닥을 덮고 있는 고운 입자의 붉은 모래를 공중에 흩날려 신비한 장면을 연출하거나, 동굴 곳곳에 위치한 동물 문양의 포토존에서 멋진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우리가 투어를 한 오후 3시경 동굴에 뚫린 구멍 사이로 한낮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동굴 이곳저곳을 비추는 빛이 신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투어를 마치고 우리 차가 주차된 곳까지 이동하는 길, 다시 운전대를 잡은 Richardson의 어머니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Richardson의 딸인 손녀로부터 온 전화였다. 손녀가 피자 먹고 카페에 들렀다 오겠다고 하니 할머니가 안된다며 옥수수로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신다. 우리네 할머니와 손녀의 통화와 다를 바가 없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은 안 먹이고 싶은 할머니 마음은 다 같다는 생각에 그녀가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어느새 저녁 6시가 가까워진 시간, 해가 저물어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오늘 묵게 될 숙소까지는 2시간 30분을 더 가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