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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Jan 30. 2019

왕십리 그 공간

2년 8개월간 살았던 왕십리를 떠나며

얼마 전 이사를 했다. 2년 8개월간 머물렀던 왕십리를 떠나며 기억에 남는 곳을 몇 군데 돌아보았다. 나는 하왕십리동(구 왕십리제2동)에 살았다. 흔히 왕십리 뉴타운의 깔끔하고 단정함과는 조금 먼 하왕십리동은 작은 빌라와 새로 생긴 아파트가 섞인 곳이었고 근처에는 행당시장이 있었다. 상왕십리역 4천 출구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은 내 걸음으론 10분 정도 걸렸고 그 사이에 자주 가던 곳을 사진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면서 왕십리 생활을 기록으로 정리해본다.



바닐라의 미용을 맡겼던, 버플퍼피


반려견과 함께하다보면 집주변에 동물병원과 함께 반려동물 미용실과 용품점을 꼭 찾게 된다. 바닐라는 말티푸라 미용이 거의 필요없는 편이었지만 윤우가 태어난 이후론 위생과 분쟁(윤우가 바닐라를 움켜잡을)을 막기 위해 짧은 털을 유지하고 있었다. 털 관리뿐만 아니라 발톱과 귀세척, 항문낭도 관리할 수 있어서 매월 한 번은 꼭 방문하던 곳이었다. 이 곳은 입양샵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주인부부가 키우는 반려견의 자견을 입양하기도 했고 주변에서 교배를 통해 얻은 자견을 입양대행해주기도 했다. 공장식으로 무분별하게 그야말로 생산되는 곳이 아니어서 비교적 안심하고 입양이 가능했고 모견과 부견을 볼 수 있고 충분히 형제와 사회성을 기른 후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가끔씩 퇴근길 유리창에 모견과 함께 누워있는 어린 강아지를 보면서 미소짓기도 했다.



 복불복 탕수육 맛집, 일품 중화요리


남편과 나의 첫 신혼집이었던 보문동 분리형 원룸에 살 때 종종 외식을 했던 중국집이 있었다. 가깝기도 하고 주말 외식으로 기분내기에 가성비가 좋았던 그 곳에서 우리 부부는 탕수육과 짬뽕하나 콤비가 되었다. 왕십리에 이사와서도 맛있는 탕수육을 찾았고 배달도 안되는 베짱 좋은 이 집을 찾게 된 것이다. 중화요리 일품은 매장에서 먹거나 포장으로 해서 집에서 먹곤 했는데 지하철이 상왕십리역에 도착하면 전화로 주문을 해서 집에가는 길에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중국집은 비정기적인 휴무가 많아서 분명 건물주가 아닐까 의심을 해본다. 사진을 찍었던 그 날도 문을 닫아서 결국 먹지 못하고 이사를 갔다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위치는 버블퍼피 맞은 편.


조용히 글 쓰기 좋았던, 이 커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구축건물도 하나씩 리모델링 또는 신축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사올 때 있었던 목욕탕 자리를 허물고 새로운 건물이 새워졌고 그 자리에는 독서실이 들어섰다. 독서실 1층에는 네일샵과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가 바로 이커피였다. 아이를 낳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일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할 때 가까운 카페로 이 곳을 자주 가게 되었다. 간혹 시끄러운 아저씨 부대가 쩌렁쩌렁 떠들때도 있었지만 아이를 돌보는 시간에서 벗어난 내겐 큰 이유가 되지 않았다. 혼자 있기 좋은 카페였던 이 곳에서 글을 쓰고 일을 했다. 아마 이사를 간 곳에서도 나는 그러한 공간을 찾게 될 것이다.


 부동산 아닌 부식가게, 이름없는 그 가게


원룸생활을 할 땐 냉장고가 작아 장보기는 일종의 사치였다. 먹을만큼만 장보기를 선호하는 내게 조그마한 마트나 슈퍼, 반찬가게, 부식가게는 작은 소비를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다. 다만 현금을 잘 가져다녀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함께 살게 된 시엄마도 이런 곳을 좋아하셨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채소나 과일, 수산식품도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부동산 간판을 달고 있어서 부동산가게라고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시엄마는 가능한 여기서 사오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판매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한 쪽 다리가 조금 불편하셨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일부러 만원짜리 한 장은 꼭 갖고 다니는데 5천원씩 사던 꼬막 한 소쿠리가 벌써 그립니다.


손님과 함께 가곤 했던 수플레 맛집, 카페 우에노


그 전에는 그냥 허름한 곳이었다. 대체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하는 곳에 빈티지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카페가 들어선 것이다. 이름도 독특한 우에노. 검색해보니 일본의 지명이름 같았다. 내가 살고 있던 바로 앞에 들어온 카페라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먹곤 했는데 괘 좋은 원두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수플레 케잌이 너무 맛있었던 곳이라 지인이 방문하는 날이면 이 곳에 데려가 디저트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커피와 쌍두마차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자주 머무르던 공간이기에 애착이 갔던 곳. 바닐라라떼 한잔이 너무 마시고 싶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찍었던 터라 자주가던 곳이 더 있지만 담지 못했다. 행당시장의 목살맛집 땅코숯불구이랄지 행당족발은 최애 맛집이었다. 그리고 프렌치 플라워 전문샵 꽃이있는하루도 좋은 일이 있을 때 꽃이나 식물을 사러갔던 곳이었다. 동네에는 그 동네마다 분위기를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 나는 그 공간에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여유와 행복을 느꼈다. 언제 다시 왕십리에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공간이 오래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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