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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나만의 속도로 나아갈 뿐, 영화 <라라걸>

모두에게 평등한 승리의 신을 만나기 위한 미셸 페인의 기나긴 레이스

영화 <라라걸, Ride Like a Girl>을 보는 동안 확실하게 알게 된 단어가 있다.

바로 말을 타는 '기수(騎手)'를 의미하는 jockey. 대대로 훌륭한 경마 기수 조키를 배출해 낸 페인 패밀리의 막내 '미셸 페인'이 '멜버른 컵'에서 최초로 우승한 여성 기수 jockey 가 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라라걸.

특히 '여자처럼 달리다 Ride Like a Girl'이라는 영화의 원제처럼 주인공 미셸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 기수답게'라는 잘못된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며 마침내 진정한 jockey로 거듭나는 이야기인 영화 라라걸은 최근 영화계에서 많은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여성영화'의 정석을 그대로 밟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집안 대대로 훌륭한 경마 기수를 배출한 '페인 패밀리'


155년 역사상 멜버른 컵의 트로피를 거머쥔 최초의 여성 선수였던 미셸 페인의 삶은 어쩌면 그 자체가 기적이고 영화 같다. 가족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의 엄마는 그가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패디 페인(샘 닐 분)은 성격과 성향 모두 제각각인 개성 강한 10남매를 홀로 키워냈다. 형제들 중 미셸과 가장 친한 미셸의 오빠 스티브는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고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을 넘어 '깨 부수며' 기수로써 성공가도로 달리던 그의 언니는 낙마 사고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대대로 우수한 경마 기수를 배출한 페인 패밀리가의 막내로 태어났기에 다른 친구들보다 말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미셸에게 말과 마구간은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성장과정에서 유일한 안식처가 돼주었다. 

또한 역대 멜버른 컵을 우승한 기수와 말의 이름을 모조리 외우며 페인 가문 여성들이 감히 꿈꾸지 못했던 '멜버른 컵 우승'에 대한 미셸의 꿈은 녹록지 않았던 그의 삶의 가장 큰 동력이자 존재 이유였을 것이다.   


미셸에게 항상 기다리고 인내하라 말하는 미셸의 아버지 패디 페인


문제는 여성인 미셸이 '기수'로써 인정받기까지 다른 남자 형제, 남자 기수들보다 더 많은 장애물을 뛰어넘고 더 혹독한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체적 한계와는 별개로 미셸의 남자 형제들은 미셸보다 쉽게 대회에 참가하고 좋은 말로 연습해 볼 기회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그의 여자 형제들은(남자 형제들보다 심지어 실력이 더 뛰어나지만) 선수로써 최고의 기량을 보일 수 있는 시기에 결혼과 가정을 택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력 단절 여성'이 된다. 페인가 10남매의 정신적 지주이자 기수 선배인 아버지 패디 페인 역시 미셸이 '멜버른 컵' 우승이라는 무모한 꿈에 집착하고 앞서 나가기보다는 치명적 사고 가능성이 항상 따라다니는 경주 세계에서 조금 더 인내하고 기다리기를 바란다. 

물론 어느 사회 대부분의 직종에서 그렇듯 '기수'로써 온전히 인정받기 위해 죽을 듯이 노력하는 미셸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평가절하되고 개념 없는 남자들의 성희롱의 대상이 되는 통과의례를 겪는다. 



말에 대한 애정, 기수로써의 성공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그에 필요한 훈련과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라도 뒤지고 싶지 않지만 '여자답게'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깨부수려는 미셸의 고군분투를 보고 있노라면, 말의 세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관객이라 하더라도 누구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아마 그 이유는 미셸이 겪고 있는 부당함이 미셸만의 것이 아닌 우리 사회 모든 여성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이고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기에 누구보다 성공하려 애썼던 미셸이 치명적 부상을 입었을 때는 미셸의 가족들과 함께 좌절했고 함께 울었다.  


승리의 신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한 미셸 페인


그런 의미에서 오래전 아버지 패디의 조언대로 자신만의 속도로 기리고 인내하며 빈틈을 찾아 재빠르게 움직이며 기존의 '여성답게'라는 틀을 깨 부스고 마침내 미셸 스스로 새롭게 규정한 '여성답게 달리는 Ride Like a Girl' 모습은 강력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남녀 상관없이 모든 관객들에게 미셸같이 해내고 싶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준다.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한 후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여자는 힘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방금 우리가 세상에 이겼네요"라며 당당히 외침으로써 승리의 신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스스로 그리고 당당히 증명한 미셸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불과 5년 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프다. 

결국 미셸처럼 묵묵히 자신의 속도대로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그 무언가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며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영화 <라라걸>은 우리만의 속도대로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반드시 우리만의 방식대로 가장 현명한 정답을 찾을 것이다. 미셸처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의 많은 변화를 경하고 있는 오늘, 당신께 영화 라라걸을 꼭 추천하고 싶다.


개봉은 4월 15일 수요일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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