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이력서

by 리박 팔사

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제1장 대학 입시의 실패


인서울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공의 여권이었으며, 나는 그 여권을 얻지 못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밤새워 문제집을 풀면서 달라질 인생을 꿈꿨던 나는 결과 발표날 세상이 무너짐을 느꼈다.

이 실패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평가의 잣대가 되었다.

친척이나 친구의 시선보다도 나의 대학 위치만으로 평가하는 말이 괴로웠다.

나는 오랫동안 이 낙인으로 나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해야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실패야말로 나를 짓눌렀던 세상의 잣대가 얼마나 허무한지 가장 먼저 가르쳐준 교훈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남들의 세운 기준보다는 내가 보는 세상에 더 관심을 가졌다.

나에게는 어디에 있는가 보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가 중요하였다.


제2장 첫사랑의 실패

대학 시절, 버스에서 양보를 하던 여학생이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 4년 동안 제대로 된 연애는커녕 나는 그저 상대의 주변만 맴돌며 일방적인 감정만을 쏟아부으며 무리하였다.

상대를 잃지 않으려고 나 자신을 끝없이 깎아내던 그 시절, 공허함과 자기 소진이 계속 되었다.

사랑이란 서로 함께 확장하는 것임을 몰랐었다.

이후 나는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하고 내 취향, 내 생각, 내 시간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웠으며, 타인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함의 중요성을 느꼈다.


제3장 강단의 꿈, 실패


새벽까지 공동 연구실에 앉아 자료를 뒤지고 발표 전날 떨리는 손으로 슬라이드를 고치던 밤이 이어졌으며, 그게 나의 생활이었다.

그 지적 헌신이 강단으로 이어져 내 삶이 완성될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수없이 지원했던 강단의 문은 번번이 굳게 닫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직함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배우는 그 자체가 기쁨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내 공부는 세상의 인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제4장 취업 실패


“홀로 버티면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한 나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다양한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면서 그 끈마저 놓아야 했다.

면접관의 눈빛은 학문적 순수성보다는 실리적 효율성을 평가하였고 나도 인정하였다.

그날 면접장을 나서며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은 소속과 직함이었다.

지식에 대한 순수한 갈망보다는 세상이 인정하는 명패였다.

이 마지막 패배 덕분에 나는 비로소 세상의 인정이라는 타인의 눈에서 벗어났다.

나는 이제 내 가치를 믿고 나만의 속도로 걷는다.


제5장 결론: 실패 이력서를 작성하며


나의 실패 이력서는 여기서 끝나지만 ‘나’라는 경력은 지금부터 시작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나는 실패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평온하고 만족스럽다.


나는 끝없는 성공 레이스 대신에 나 자신을 향한 여행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실패는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을 남겨주고 떠났다.


나는 깨닫는다. 실패의 이력은 나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포기와 실패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행위는 나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경력은 실패에도 몇 번이고 일어난 기록이며 더욱 밀도 있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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