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도시계획이 원했던 삶이었을까?
밤이 오면 신도시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에는 반듯한 아파트와 질서 정연한 도로가 도시의 규칙성을 보여주었다면 밤은 수천 개의 창문 밝게 빛나는 그림이었다.
어떤 집은 환하게 켜져 있고 어떤 집은 일찍 불이 꺼졌다.
같은 평형대이자 같은 단지임에도 각각 창문의 빛은 차이가 있었고 각자의 삶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성처럼 빛났고 또는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신도시의 밤은 획일적이지 않았다.
늦은 공부를 하는 학생, 일찍 자야 하는 아이, 혹은 퇴근이 늦어진 부모의 그림자가 담겨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신도시의 밤은 여름방학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한낮의 열기가 사라지면 아이들은 아파트단지 놀이터 근처로 몰려나왔다.
가로등 불빛 아래 게임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단지를 빙빙 돌았다.
단지 내 상가는 또 다른 아지트였다.
밤 9시쯤 2000원을 쥐고 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 먹으며 웃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부모님은 단지 안에서 안전할 거라 믿었고 우리도 가로등 불빛 아래서 밤늦게까지 놀 수 있다는 것을 즐겼다.
중고등학생이 되자 신도시의 밤은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학원, 야간자율학습, 독서실 등으로 가는 길, 처음으로 늦게 귀가하며 느끼던 피곤함.
창문 불빛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TV와 라디오 소리가 신도시의 밤을 채웠다.
첫사랑과 함께 걷던 늦은 밤 근린공원, 친구들과 모여 치킨을 먹고 자정 넘겨 집에 들어가던 길, 그 모든 순간이 신도시의 밤에 녹아 있다.
밤은 더 이상 노는 시간이 아니라 설렘과 고민이 교차하는 시간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 마주한 신도시의 밤은 또 다른 얼굴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늦게 돌아온 밤, 상가의 절반은 불이 꺼져 있었고 정류장만이 환하였다.
대부분의 불빛이 꺼진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마치 도시 전체가 잠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재우고 창가에 서 있는 엄마, 새벽에 도착해 자동차 시동을 끄는 아빠, 배달 오토바이의 불빛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들.
신도시의 밤은 고요하지만 각자의 삶이 쌓여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신도시의 밤은 여전하다.
아파트 단지를 밝히는 수많은 창문 불빛은 여전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도시의 밤과 불빛은 한 세대의 추억이자 다음 세대의 현재이다.
우리가 자라며 느꼈던 설렘과 고독, 그리고 안도감은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신도시의 밤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