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도 여느 때처럼 아이와 나란히 누웠다.
“우리 오늘은 꿈에서 만나면 뭐 하고 놀까?“
나의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자고 하기에, 눈이 오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서 잠에 들었다.
원래 오늘 날씨 예보에는 눈 소식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에게 작은 소망 하나쯤은 품게 해주고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 기도였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 정말로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아이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아이는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며 기뻐했다. 새하얗게 내려앉은 눈과 날 듯이 뛰는 아이의 모습이 대조되어, 기쁨은 더욱 선명해졌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건네준 선물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아침이었지만, 오늘은 생일임에도 유난히 평일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출근 전 남편의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에도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저 1년 중 하루를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껏 나는 생일은 특별한 날이니, 특별하게 보내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던 내가 서른몇 해 째 같은 날을 맞이하다 보니 나의 생일이 더 이상 각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조금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일은 여전히 힘껏 축하해 주면서도, 정작 나의 생일 앞에서는 담담해진 마음이 낯설었다.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특별하게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조용히 나를 챙겨주기로 했다. 종일 나를 어떻게 챙겨주어야 할지를 떠올렸다. 의식적으로 평소의 루틴대로 사는 게 내게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 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요가를 다녀왔다. 요가가 끝난 뒤에는 미뤄두었던 소소한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라테와 샌드위치를 시켜 두었다. 집에 와서는 오래간만에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공간에 소란함을 채웠고, 점심을 먹으며 밀린 생일 축하 메시지에 천천히 답장을 남겼다. 예전 같았으면 무언가 더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빴을 텐데 오늘은 느긋하게 지나가는 하루의 흐름에 의식을 맡겼다. 충분히 충만했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해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서도 어김없이 축하와 선물이 도착했다. 늘 보고 싶고 그리운 나의 가까운 지인들은 ‘조만간 얼굴 보러 올라가겠다’라는 말을 전해왔다. 우리는 이미 마음으로 먼저 만난 것 같았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여전히 나와 같다는 걸, 오늘 또다시 알게 됐다. 그동안 외롭고 아쉬워하던 만큼 감사와 감동으로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선물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생일 축하를 받는 것보다, 내게 생일이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에 더 오래 집중했다. 생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해서 나를 소홀히 여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어떤 하루를 보낼 때 내가 가장 편안하고 기뻐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에 따라 선택한 날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아주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나를 만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퇴사 후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를 응원하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기 위해 영상통화로 취향을 물어봐준 친구도 있었다. 조용히 지나가던 나의 생일을 선명하게 밝혀준 건, 이렇게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는 이들의 마음이었다.
저녁을 먹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가족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다 같이 촛불을 불었다. 딸기가 가득 박힌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생일을 마무리했다. 요란하지 않아도, 이만하면 충분한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