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루틴을 회복하는 중입니다

by 스틸노트


험난한 등원 준비를 마치고, 오전에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면 점심도 되기 전에 기운이 빠진다.


집에 들어와 환기를 시키고 이불 정리를 하고 잠깐 소파에 기대 쉬지만, 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다음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시침을 발견하면 그제야 몸을 움직인다. 세탁기를 돌리려고 빨래를 모으거나, 반찬 한 가지라도 해놓는 식이다.


점심시간마저 놓칠까 봐 있는 반찬에 대충 밥을 차려 먹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먹는 밥이 맛있게 느껴질 리 없다. 정적이 흐르는 한낮의 집의 분위기는 고요한 새벽과 사뭇 다르다.


새벽이 내 안의 무언가가 차오르는 시간이라면, 한낮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일 뿐이다.


‘오늘도 망했네.’
‘또 제대로 시작 못했네.’
‘책도 안 펼쳐 봤잖아.’


같은 말들이 맴돈다. 자책하느라 남은 에너지마저 소진한다. 며칠 사이에 여러 일을 해냈음에도 아직 남은 체크리스트를 떠올리면, 소파에 기댄 내 몸의 무게만큼 마음도 무거워진다.


루틴을 다시 잡아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육아에도 신경 써야 하고 집 정리도 마저 해야 한다. 둘째 임신을 위한 건강 관리도, 앞으로의 삶을 위한 계획도 세워야 한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자꾸만 회피하게 된다. 당장 할 수 있는 단순한 일만 찾는다. 괜히 정리를 하거나 휴대폰을 보거나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다.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다.
나를 보여주고 싶다.


내 마음 곳곳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외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몸은 자꾸 멈춰 서 있다. 마치 어딘가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지난 명절과 방학, 이사, 아이의 새 학기 적응이라는 큰 이벤트들을 지나오며 남은 후유증일까. 잘 버텨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과 마음은 뒤늦게 뒷감당을 하느라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이렇게 리듬이 흔들릴 때는 기준을 완전히 낮출 수밖에 없다. 평소 에너지 120을 끌어내야 하루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면, 이제는 60점 정도로 낮추어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빨리 제자리를 찾고 싶다는 조급함과 불안을 내려놓고, 서서히 적응하게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단순한 방식으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새벽에는 모닝페이지와 기도 시간을 짧게 갖는다.

오전에는 정리 한 곳, 책 10분, 기록한 줄 정도만 남긴다.

오후에는 가벼운 글 한 편만 쓴다.


이 정도만 해도 오늘은 잘 보낸 하루다. 작게 시작하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간다.


예전 루틴이 깨진 김에 순서를 바꾸어 보면, 더 맞는 루틴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속도를 낮추고 충분히 쉬며 회복해야 하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쉰다는 것‘ ’제대로 채운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찾게 될 수도 있다. 오늘 잘 안되었어도 괜찮다. 내일 다시 시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정리 단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간을 잘 견디고 지난다면, 이전보다 단단한 루틴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다. 다시 나만의 리듬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