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곁에 있어도 “내가 혼자다”라는 느낌은 쉽게 달래 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달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가장 먼저,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늑한 소파에 편히 앉아 눈을 감고 고요히 내 몸 구석구석을 살핀다.
피곤해서 긴 낮잠이 필요한지, 기력이 부족해서 고기를 먹어줘야 하는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콤하거나 달달한 음식이 먹고 싶은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라마를 보고 싶은지, 혹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지. 친절하게 묻고 차분히 다독인다.
다음은, 작은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음악 한 곡을 퍼집중해서 듣거나, 향 좋은 차를 마신다. 라디오를 틀어도 좋다. 몸을 완전히 일으키기 전, 마음이 천천히 준비되도록 기다려주는 시간이다. 오감이 자극되면 마음도 조금씩 반응한다.
그리고, 리듬을 회복한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며 잠시 햇볕을 쬐거나 단지를 작게 한 바퀴 걷는다. 중요한 건 크고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기대치를 낮춘 가벼운 몰입이다. 글쓰기나 독서 10분, 저녁 재료 손질 10분처럼 작지만 완결된 경험이 성취감을 불러온다.
루틴은 시간 속의 나를 단단히 붙드는 닻이 된다. 이미 정해둔 흐름 덕분에 가장 빠르게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내가 세워둔 루틴은 아침 모닝페이지 20분, 자기 전 불렛저널 기록, 성경통독과 감사일기, 달리기와 요가, 좋아하는 감성의 책 느리게 읽고 필사하기 같은 것들이다.
특히, 글쓰기는 내가 느낀 감정과 그때 내가 바란 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고 싶은지 기록하면서 진실한 속내를 드러내게 한다.
육아와 집안일은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체력이 우선이다. 잠을 충분히 자고,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식사를 챙기며, 매일 햇볕을 쬐고, 스트레칭한다.
챌린지나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몰입하는 시간은 우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막아주고,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이 모든 방법은 하루 곳곳에 세워둔 일종의 장치들이다. 흔들리더라도 그 장치를 붙잡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뿌리를 내리고 나를 단단히 지탱하는 일이다.
아직 루틴이 없다면, 지금부터 하나씩 세워보면 된다. 아이 등원 후 집에 바로 들어가지 말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다이어리를 쓰거나, 오후의 독서 30분처럼 작은 일상요소로 외로움의 빈틈을 메울 수 있다.
그림, 사진, 뜨개, 운동, 기록 같은 몰입의 즐거움도 좋다. 글쓰기는 감정을 흘려보내는 안전한 통로가 된다. 새 노트와 펜으로 글씨를 써보거나, 소품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것, 그것이 단 하나의 기준이 된다.
가끔은 용기 내어 말해도 좋다. 남편이나 가족에게 아이를 잠시 맡기고 1~2시간 바람 쐬러 다녀오거나, 집안일을 하는 동안, 대신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전쟁을 치르는 이들에게 전하는 편지다. 동시에, 그때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몸은 지쳐 있는데, 털어놓을 곳도 없고, 위로받고 싶어도 그럴 틈이 없었겠죠. 그 고요한 무너짐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왔을 당신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픕니다.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아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지만, 엄마도 품 안에서 쉴 시간이 필요해요. 가끔은 슬픔에 무너져도 괜찮습니다.
먼저 내 안에서 간절히 외치는 목소리를 끌어안아 주세요.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몰아치지 말고, 지친 마음을 다정히 쓰다듬어 주세요.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있는 일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이미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어. 힘든 게 당연해. 괜찮아, 혼자가 아니야.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나는 잘하고 있어. 나 오늘 정말 잘 해냈어. 지금은 나도 돌봄이 필요해. 내가 하는 모든 건, 나 혼자 잘 살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이 작은 행동들이 결국 나를 붙잡아 줄 거야. “
하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커피를 사러 가는 것도, 나를 지키기 위해 쓰는 시간이에요.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쳤을 땐 모든 기준을 낮춰도 괜찮아요. 꼭 해야 할 일을 5분만 하고, 30분은 좋아하는 프로그램 틀어놓고 쉬어도 돼요. 그건 보상이 아니라,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기도 해요.
손질이 번거로운 요리는 내려놓고 간단한 한 그릇, 밀키트, 배달에 의지해도 괜찮아요. 아이 재운 후에는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부터 15분만 해보세요. 아이를 돌보기 전에, 나부터 숨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해요.
지금은, 내가 먼저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에요.
당신도 당신 아이만큼 참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에요.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세요. 오늘 내가 전한 마음과 방법들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시련들 속에서, 만사에 대하여,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는 어떤 현실과 접촉하게 된다. “
_ 장 그르니에, <섬>
바다 위에서 배가 뒤집히듯 삶이 흔들릴 때, 유일하게 발을 디딜 수 있는 섬 같은 존재가 드러난다. 삶의 가장 버거운 순간, 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되는 절망의 순간을 마주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붙잡아 주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섬 같아서. 고유한 외로움을 품고 있다. 섬은 바다 위에 고립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견고하게 서 있는 땅‘이다. 절망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내가 어디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 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 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벽에 걸어야 할 것은 쓸쓸한 도로변 휴게소 그림일지도 모른다.
(중략)
도로변의 식당이나 심야 카페테리아, 호텔의 로비나 역의 카페 같은 외로운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고립의 느낌을 희석할 수 있고,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느낌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_알랭 드 보통, <슬픔이 주는 기쁨>
도서관이나 카페 같은 외로운 공공장소에 앉아 있으면 공허함이 달래진다. 수많은 책과 사람들 틈에서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 스며들고 만다.
마지막으로, 그때 내게 위로가 되었던 책 다섯 권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정여울,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장석주,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알랭 드 보통, <슬픔이 주는 기쁨>
정지우, <그럼에도 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