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연휴 끝까지 나를 소모하지 않고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y 스틸노트


올 것이 왔다. 10월의 황금연휴.


여행을 몇 달 전부터 계획해 둔 사람들은 곧 떠날 생각에 들뜨겠지만, 고향이 멀거나 아이 있는 집들은 챙겨야 하는 짐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역시 ‘그냥 우리끼리 여행이나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난 설에 아이가 아파서 가지 못했던 기억을 하면, 피할 길은 없다.



얼마 전 읽은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한문화)에서 만난 문장이 떠오른다.

“작가는 인생의 모든 면들에 대해 한 모금의 물이나 식탁에 묻어 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 하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


골드버그가 말한 건 삶의 하찮고 작은 부분들까지도 기록하고 각인시켜야 한다는 뜻이었지만, 나는 지금의 상황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고 느꼈다.



어릴 적 명절이면 할머니 집에 가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힘들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떠오르는 건 나를 반겨주던 얼굴, 넘치게 주었던 사랑뿐이다. 아마도 그 시절 부모님들도 지금의 나처럼 힘들고 지쳤을 텐데, 나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세 살이 된 아이에게 “명절이라 우리 할머니 댁에 갈 거야”라고 말하면, 벌써부터 방방 뛰며 신나 한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부모의 힘들어하는 모습만 기억한다면? 그건 추억이 아니라 짐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부모의 표정을 읽는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아이는 행복을 느낀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한숨 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남길지 고민하는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면, 결국 나도 행복해지니까.



위의 책 같은 장에서 이런 문장도 나온다.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네!”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


명절도 결국 아이에게는 ’기억하게 할 하루들‘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가야 할 길, 긍정 회로를 돌려보자.


장거리 이동도 계획할 수 있다. 아이 낮잠 시간을 고려해서 출발 시각을 맞추고, 그 사이 휴게소에서 점심과 휴식을 취한다. 잠에서 깬 후에는 간식과 장난감, 스티커북으로 시간을 채운다. (비장한 마음으로 다이소를 털어왔다.)


고향에 머무는 동안은 가족들에게 최대한 의지할 생각이다. 타지에서 육아하는 내게 주는 보상이라 여기고, ’공동육아‘를 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엄마밥도 얻어먹고, 대화도 나누며, 피크닉이나 카페 나들이도 즐기자. 나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잠자리를 위해 애착인형, 베개, 무드등까지 아이가 쓰던 물건들을 챙길 예정이다.



삶의 문제들은 언제나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내가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 보일 뿐이다. 평소 긍정의 근육을 길러두면 어떤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다.


릴케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자네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그 문제들 자체를 사랑하도록 하게. 지금은 답을 구할 수 없다면 굳이 구하지 말게.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네. “


지금의 무거움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잠시 함께 지내야 할 손님일지 모른다. 억지로 몰아내기보다 곁에 두고 바라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마음은 스스로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연휴 또한 그 속에서 나름의 빛을 드러낼 것이다.


해피 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