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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Oct 02. 2023

<들어본 이야기>중 권여선<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리뷰

샛별BOOK연구소

소설집 <들어본 이야기>, 구병모, 권여선, 듀나, 박솔뫼, 한유주 소설집, 창비, 2020.


소여 ┃ 구병모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 권여선

돼지 먹이 ┃ 듀나

펄럭이는 종이 스기마쓰 성서 ┃ 박솔뫼

헤엄치는 밤 ┃ 한유주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세계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 젊은 독자들이 사랑하는 작가 5인의 시선을 담은 앤솔러지 『들어본 이야기』(출처: 네이버)


  권여선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리뷰 


  한 가족이 살아가는 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권여선 소설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도 드라마틱한 가족의 애환을 그렸다. 오숙은 오빠 오익과 살면서 밥을 해대고, 빨래를 해대면서 직장을 다녔다. 직장에서 번 돈은 오빠 학비를 대고 오빠 바지를 사주고, 키가 작은 오빠바지를 줄이는 데도 썼다. 오숙은 결혼하기 전까지 오빠의 뒷바라지를 해댔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오숙은 사그라들 줄 알았던 자신의 희생이 억울에 미치겠다. 대학도 못 가고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뼈를 갈아 오빠를 뒷바라지했건만 엄마는 아들만 귀하다. 엄마와 오빠는 오숙에게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냐고!"한다. 이처럼 잔인한 말은 없다. 오숙에게 그때 힘들었지. 고생했지. 미안하다. 고맙다. 네 덕이다. 은혜 잊지 않을게... 이런 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익은 오숙이 다 저 좋아서 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럴 수가... 엄마의 생각도 오익과 같다. 못 배운 딸이 정서방이랑 알콩달콩 잘 살 것이지 왜 우울한지, 왜 자신에게 자꾸 전화를 거는지 어머니는 곱씹지 않고, 반성 없이, 모든 걸 오익과 통화하며 푸념으로 늘어놓는다. 오숙은 가족과 의절할 결심을 한다. 


  오숙은 오익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다. '자신이 '너'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했으며 그 후 어떻게든 '너'를 용서하려고 구밀복검과 교언영색으로 '너'를 대해왔으나 도저히 용서가 안 되어 이 순간부터 '너'와 인연을 끊고 평생 의절하겠다'(p.181)는 내용이다. 


오익은 오숙이 쓴 사자성어를 가지고 오숙을 짓밟는다. "아니, 그게...... 토사구팽은 그렇다 쳐도 구밀복검이나 교언영색은 너무 우습잖아요? (...)이럴 때 쓰는 적당한 말이 아니라고요. 차라리 절치부심을 했다 그러면 또 몰라도. (...)그러면 와신상담이라도...."(p.181) 오익은 어머니에게 히죽거리며 말한다. 사자성어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나 하고 썼을까 의심하면서. 몰염치하다. 여동생의 말을 눈곱만큼도 읽지 못한다. 설령 사자성어가 상황과 맞지 않게 썼더라도 "의절"하겠다는 태도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거 아닐까. 왜 의절하려는지 생각하며 아파해야 할텐데... 


☎토사구팽: 토끼토/ 죽을 사/ 개 구/ 삶을 팽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구밀복검: 입 구/ 꿀 밀/ 배 복/칼 검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 겉으로는 꿀맛같이 친절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한다)

☎교언영색: 공교할 교/ 말씀 언/ 하여금 령/ 빛 색 (교모한 말투와 얼굴빛을 꾸민다. 즉, 아첨하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

☎절치부심: 끊을 절/ 이 치/ 썩을 부/ 마음 심(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 대단히 분한 마음)

☎와신상담: 누울 와/ 섶 신/ 맛볼 상/ 쓸개 담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


  독자는 오숙의 생각을 알 수 없다. 오로지 어머니가 전하는 말로만 추측할 뿐이다. 어머니가 오익에게 전하는 말도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른다. 오숙의 말은 어머니라는 여과장치를 거쳐 헤아려볼 뿐이다. 오숙은 어머니와 오익을 어떻게 생각했던 것일까. 자신은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필요할 때 쓰다가 필요 없을 때 야박하게 외면당했다고. 그것이 억울하다며 사자성어를 썼다. 그럼에도 오빠를 용서하려고 '구밀복검'과 '교언영색'으로 마음을 다스렸으나 도저히 안 되었다며 이제 인연을 끊고 평생의절하겠다고 통보했다. 


  오숙은 왜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 가족을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결정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말해보고, 오빠에게도 두드렸을 것이다. 어머니는 오빠의 안쓰러움, 기대, 사랑을 오숙에게 늘 전했을 터였다. 자신이 그동안 한 뒷바라지는 모른채하며.


 오숙이 의절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전생에 너하고 나하고 숙이한테 정으로 많은 빚을 진 게지." (p.187)라며 한숨을 쉰다. 어머니의 대안은 그동안 못 준 정을 지금부터라도 숙이에게 듬뿍 주자는 것이다. 해결 방법 보다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머니는 절차를 생략하고 건너뛰고 오숙에게 다가서려 한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오익에게 전화를 걸어 도통 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다고 전한다. 이런 말을 듣는 오익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와 오숙의 행동을 고스란히 전하는 어머니. 어머니가 잠을 잘 잤다는 말을 오익은 들어본 적이 없다. .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든가 잠깐 눈을 붙였다 뗀 뒤로 날밤을 새웠다든가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했다든가 하는 말"(p.173) 어머니의 18번이다.


   오익도 심리적 불안증상이 보인다. 오익은 유회장 사무실에서 상근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이면 이십사 시간 무인카페에 가서 논문을 쓴다. 논문을 읽고 논문을 써야 하는데 자꾸 상가 사람들과 술자리가 잦아진다. 상가 사람들은 오익을 "박사님, 여기, 젋은 박사님!"(p.177)이렇게 부른다. 박사아니고 박사논문을 쓰는 학생이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오익은 박사님 소리가 싫지 않다. 오익은 대학원 연구실에서 함께 근무한 정과 백을 만나 고기를 구워 먹다가 귀에 "새 세 마리...."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후 오익의 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샤워를 하다가도 환청이 들린다. 오익의 증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머니가 들려준 포수가 활을 쏘아 참새 아니고 까치 세 마리를 죽였다는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들리는 소리. "새 세 마리...." 귀를 문질러보고 다른 생각을 해도 자꾸 들린다. 오익은 초조한 상태에 사로잡혀 논문이 써지지 않는다. 오익은 과연 박사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오익의 증상을 없애려면 오숙이 보내온 문자에 대해 어떤 방식이로든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는 계속 잠 못 들것이고, 오익은 환청에 시달리고, 오숙은 멍에가 가슴에 남겼다. 바람난 아버지로 상처받은 가족이 더 이상 해체는 없어야하지 않을까. 당장은 시간을 두고 숙고하며, 긴긴밤이 지나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길 바라본다. 어머님은 잠 못 이루며 오숙의 애썼음을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


(발췌 페이지 출처: <각각의 계절> 권여선)

작가님들 사인~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발췌


<각각의 계절>에서 발췌했어요. 


익아, 너 원채가 뭔지 아니?

어머니가 물었다. 어떤 말은 특정 음식이 인체에 계속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 정신에 그렇게 반복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오익은 생각했다.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기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점점 더 그말에 사로잡혀 꼼짝딸싹도 할 수 없게 된다. 원체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빚의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 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 오익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지만 또렷한 어떤 소리가 들려온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p.172) 


오익은 오숙이 자신에게 보낸 그 어처구니없는 문자를 어머니에게도 보냈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막상 듣고 보니 기가 막혔다. 오숙이 보낸 문자를 요약하자면, 자신이 '너'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했으며 그후 어떻게든 '너'를 용서하려고, 구밀복검과 교언영색으로 '너'를 대해왔으나 도저히 용서가 안 되어 이 순간부터 '너'와 인연을 끊고 평생 의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저도 봤어요. 너한테도 보냈니, 그게? 네. (p.181)


지금은 숙이가 전생의 원한을 못 풀고 마음을 굳게 닫아걸었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정을 주고 위해주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 거다. 명채는 명으로 갚고 정채는 정으로 갚아야 한단다 그러니 날이면 날마다 숙이에게 정을 듬뿍 주자, 익아. (p.187)



이렇게 '새 세마리'를 무의미한 음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거듭하는 것과는 모순되게 오익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무의미한 음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추적하는 노력 또한 멈출 수 없었다. 이를테면 파훗키에에 이런 비슷한 소리가 들려온 후 오익은 그게 무슨 뜻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파--괴--가 아닐까 생각했고, 또 한참을 더 생각해보고 파죽지세일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파괴된 파죽지세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떤 깊은 암시를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오익은 환청 이후의 초조한 상태에 사로잡혀 양손으로 무엇인가를  찢거나 비비거나 돌리면서 한두 시간씩 멍하니 앉아 있는 일이 잦아졌다. (p.194)

오래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어나가는 게 마치 원채의 장부를 들여다보는 일 같았다. 지도교수인 박선생은 오익이 논문에 간과한 부분을 오익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자신이 알아챘다면 간과했겠는가. 마찬가지로 오익은 오숙이 얼마만한 분노가 있었기에 자신을 ‘너’라고 부르며 의절을 통보하는 문자를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까운 이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이 딸이었다면, 모든 걸 희생하고 차별받고 살아온 그런 존재였다면 오숙처럼 무섭게 돌변할 기회라도 있었으련만, 그는 한없이 억울했고 뭔지 모를 어떤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만 그런 게 아니라 자신도 어머니를 닮아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자신이 오숙처럼 되기를 바라느냐고, 앞으로 자기가 다 포기하고 희생하고 살면 되겠느냐고, 어머니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p.200)

 

잠시 뒤 귓속 깊은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궤헤그르륵… 언뜻 개회 그릇이 연상되었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오익은 생각했다. 궤헤그르륵…… 계륵인가, 개굴인가, 궤헤그르륵…… 그의 두 눈이 슬슬 감겼다. 졸음이 쏟아졌다. 오익은 낮잠에 빠져들면서 자신이 결국 박사 논문을 쓰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해도 아무렇지 않고 지금 당장은 궤헤그르륵…… 그걸 알아내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 같았다. 푹 자고 나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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