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는 태도

사파의 시간, 또또의 시간 그리고 나의 시간

by 뭉클

베트남 북부 사파에 왔다.

아침부터 안개가 짙다.

창문을 열자 사파의 도시는 어젯밤처럼 또다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

보일 듯하다가 이내 사라지고,

사라졌나 싶어 하면 잠시 얼굴을 내민다.

이곳에서 풍경은 고정되지 않는다.

사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자신을 지웠다 다시

쓰는 필체로 존재한다.


사파는 베트남 북부, 라오까이성의 고산지대에

자리한 도시다.

해발 천오백 미터가 넘는 산자락에 매달리듯 놓여

있다.

지도에서 보면 작고 단순한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발을 들여놓으면

이곳은 평면이 아니라 층층이 쌓인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파는 오랫동안 산이었을 것이다.

길보다 계곡이 먼저고, 집보다 논이 먼저였다.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 정부가 이곳을

발견(?)했을 때

사파는 이미 사람들의 삶으로 충분히 빽빽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고산의 서늘함을 휴양지라

불렀고,

돌로 교회를 세우고, 직선 도로를 내며, 산을

내려다보는 법을 배웠다.

지금도 사파 중심에는 회색 돌로 지은 교회가 남아

있다.

고딕 양식의 첨탑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서 있지만,

그 건물을 지은 사람들도 떠나고 그들의 목적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남은 것은 돌과 안개,

그리고 그 곁에서 이전처럼 다시 자기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사파의 역사는 그런 것 같다.

외부에서 온 시간은 흔적만 남기고,

이곳의 삶은 다시 산의 리듬으로 되돌아간다.


사파에는 하나의 얼굴이 없다.

흑몽족, 다오족, 자이족, 타이족….

이곳은 단일한 민족의 도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소수민과 세계관이 겹겹이 공존하는

장소다.

빛깔과 모양이 서로 다른 그들의 옷은 장식이

아니다.

쪽빛으로 물들인 천, 붉은 머리 장식, 은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아름다움 이전에 그들 환경 기억의 언어 같다.


논은 벼랑 끝에 있고,

마을은 계곡 아래 숨어 있으며,

길은 늘 비스듬게 굽어있다.

이곳에서 곧은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들은 멀리 보지 않는다.

사파 사람들의 시선은 늘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발밑의 흙, 오늘의 날씨, 선명한 빛깔의 옷을 입고

안개 속에서 솟아나는 이웃의 안부...

안개가 짙은 날에도 그들은 하루를 미루지 않는다.

안개는 이곳에서 장애물이 아니라 삶이 작동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안개는 영어로 misty라고 한다.

그 말에는 모호함과 불안이 함께 들어 있다.

우리는 대체로 안개를 빨리 걷어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방향을 잃게 한다는

이유로.

그러나 사파의 안개는 사람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속도를 낮추고,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는 것 같다.

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조심스럽게 걷고,

더 자주 서로를 확인한다.


사파의 안개를 보고 있다가 문득 우리 집 고양이

또또를 떠올린다.

또또는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묘이다.

입양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함께 살아가며 또또에게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소리가 비어있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또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공기의 떨림과

사람의 움직임과

그림자와 냄새와 표정을 먼저 읽는다.

문이 열리는 방향,

빛이 이동하는 속도,

발걸음의 무게 등.

소리가 없는 세계는 비어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또또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첫 주인이 불러주던 이름,

입술 모양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이름.

‘또또’라는 짧은 이름은

들리지 않아도 형태로 남는 신호였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에게

이름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기를 바랐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또또는 어느덧 노령묘가 되었다.

움직임은 느려졌고, 잠드는 시간은 길어졌다.

가끔 또또는 아무 소리도 없는 공간에서 한참을

깨어 있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나는 생각한다.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다가오는 것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은

얼마나 많은 긴장을 요구할지.

그 고요는 평화롭지만, 늘 경계를 포함한 고요다.

사파의 안개처럼.


사파의 사람들과 또또는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결핍을 제거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질서를 만든다.

사파의 논이 완벽하지 않듯,

또또의 세계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불완전하다고 해서 삶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들은 모두 안갯속에서 방향을 찾는 존재들이다.


곧 3월이 된다.

나에게도 새로운 역할과 미지의 임지와

롭게 가족이 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이 어디일지,

어떤 이들을 만나 어떤 관계로 펼쳐질지

모든 것이 흐릿하다.


규모가 신경 쓰이고
익숙한 결의 조직일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호흡을 맞춰야 하는 공간일지 알 수 없다.

처음 들어설 사무실의 공기,
서로를 가늠하며 오가는 짧은 인사,
말 한마디에 관계의 온도가 정해질지도 모를 첫

회의.
행정의 무게가 앞설지,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이 어렵지는 않을지
바쁜 중에 간간이 떠오르는 긴장감이 생겨난다.


초조는 이런 데서 온다.
준비할 수 없는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싶어질 때,
상상 속의 질문에 아직 없는 답을 달아보려 할 때.
괜찮아 보이려 애쓰는 마음과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나란히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파를 지나며 나는 조금 다른 태도를 배운다.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것.

모든 조건이 갖춰진 뒤에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것.

사파의 안개는 삶을 가리는 장막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들리지 않는 또또의 세계처럼, 흐릿한 사파의 안개처럼,
삶은 늘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안개를 걷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 안갯속에서도
살아가는 감각을 잃지 않는 일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