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경, 한강 유역에 대홍수가 덮쳤다.
당시 우리는 신혼 때였는데
돈이 없어
싸구려 전셋집에 살았지만
사는 집이 2층 연립이었던 덕분에
참혹한 침수는 피할 수 있었다.
한꺼번에 400 몇십 밀리인가가 왔는데
실로 엄청났다.
안양의 비산대교, 안양천 옆이 살아서
비산대교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도
직접 현장에서 바라보았다.
비산대교는 결코 작은 다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대교가 아니던가.
1층 단층집들이 지붕만 남기고 완전 물에 잠기는 데는
불과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안양천이 범람해 하수구로 물이 역류,
하수구 뚜껑이 하늘 높이 날아가는 광경은
말 그대로 충격적,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2층에 살고 있었던 우리는
주인집을 비롯한 1층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이불 보따리 등 가재도구들을
안전한 2층으로 날라 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비를 맞으며 물건을 나르는 동안
2층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그리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죄지은 일도 없는데 말이다.
하룻밤 사이에, 덕천마을이 완전 물에 잠겼다.
아침이 되어도 물이 빠지지 않아
버스로 세 정거장쯤 되는 회사에 출근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결단을 내렸다.
보따리에 양복을 싸서 머리에 이고
반바지만 입고 물속에 뛰어들었다.
어차피 버스도 안 다녔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며 걸어서 회사에 나간 것이다.
어렵게 도착해 보니 나만 출근했다.
아무도 없었다.
아…….
이제 곧 여름이다.
어김없이 장마도 오고 태풍도 올 것이다.
또 어떤 재난이 닥칠지 모른다.
물론 물난리에 대한 대비가 35년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 허망할 수 있다.
1984년 소양천의 범람,
1987년 풍납동 범람, 서울 아산 병원 침수 등
직접 보고 겪었다.
이만큼 살다 보니 많은 경우를 경험했다.
꼭 대규모 피해가 아니었어도
매년 꼭 물 피해는 있었다.
어쩌겠는가. 자연이 하는 일을.
피해를 피해 갈 수 없다면,
결국,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지.
다가오는 여름,
모두가 슬기롭게 잘 대비해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