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이야기다.
열한두 살 무렵, 내게는 두 동생이 있었다.
일곱 살과 네 살.
어머니는 늘 집을 비우셨다.
병약하신 아버지께서 자주 입원을 하셔서
병원에 계셔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안 계신 집, 그 시절
두 동생 밥 먹이는 일이 내게 가장 큰 임무였다.
어느 날 점심 식사 때였다.
여느 날처럼 셋이서 밥을 먹었다.
내가 밥상을 차려주기만 하면,
큰 녀석은 혼자서 잘 해결했다.
문제는 네 살짜리 막내였다.
아직 어려서 매운 반찬을 못 먹었다.
그래서 김치 등을 일일이 물에 씻어서 먹여줘야 했다.
그렇게 셋이서 식사를 마치고
김치 씻은 물 처리가 귀찮아졌다.
생각없이
창문 너머로 휙— 붓는 순간,
아래쪽 베란다에 걸린 빨래가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이미 늦었다.
김칫국물이 그 집 빨래 위에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큰일 났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오셨다.
나는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거짓말을 했다.
“난 몰라요!”
일곱 살 동생은 모르는 척해주었다.
문제는 막내였다.
“형이 그랬잖아!”
막내의 천진한 외침에
내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
홍당무처럼 벌겋게.
쓱 우리를 훑어 본 아주머니는
생각보다 아주 살짝만 혼을 내고 돌아가셨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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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작은 해프닝일 수 있지만
어린 동생들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수치심으로 내내 힘들었다.
오십 년도 넘게 지난 일이지만
바로 오늘 일처럼 선명하다.
수치심은 평생 동안 따라다녔다.
그 날을 생각할 때마다 여전히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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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지심(羞惡之心)
사람과 짐승을 가르는 경계점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수오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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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난 절대로 동생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동생들뿐만 아니라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나는 안다.
부끄러움이란 형벌이,
얼마나 오래도록 사람을 괴롭히는지.
나 스스로
하늘이 부여한 생을 다하고
돌아가는 날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기를.
이것이
내게 남은 유일한 생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