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을 시작할 때,
난
스스로 큰 핸디캡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른바, ‘큰 바위 얼굴’
질풍노도 기엔 상당히 유리한 생존 조건이 되기도 했지만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을 땐 오히려 약점이 되었다.
나는 크고 각진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얼굴이 크고 각이 지면
전두엽 제어가 안 되는 사춘기 시절에는
아무도 감히 덤비지 못했다.
뭔가 한 힘 할 것 같다는 착각으로
누구도 싸움을 걸지 못했다.
특히 웃음기 지우고 잔뜩 인상 쓰고 있으면
슬쩍, 돌아간다.
그러나 실상은,
별것 없는 순한 청소년에 불과했는데
애들이 큰 착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보니
각지고 큰 얼굴은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큰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투리까지 마구 썼으니
험난한 서울 천지에서 어떻게 살아가랴.
고객은 인상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얼굴 크면 인상이 나쁜가.
그건 아니란다.
웃는 얼굴이 좋은 인상이란다.
웃음기가 늘 배여 있는 얼굴을 갖자!
살려면 바꿔야지.
절박한 마음으로 매일 같이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했다.
‘얼굴이 크니까 난 잠시라도 웃지 않으면 안 돼.’
이런 마음으로 틈만 나면 거울 앞에서 싱글거렸다.
크게, 작게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도록.
그렇게 애쓴 결과,
서울 온 지 어언 사십년이 되어가지만
단 한 번도 인상 나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비록 사투리는 제대로 못 고쳐서
지방 사람도 아니고 서울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 정도는 좋은 인상으로 쉽게 만회한다.
비록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하면
언젠가 만났던 사람으로 종종 오해를 한다.
“저 어디서 본 적 있나요?”
이런 질문은 수도 없이 들어 보았다.
그러면 큰 소리로 대답한다.
“전생에요!”
함께 크게 웃는다.
난 인상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