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동란이 끝난 후, 8년이 지나서 태어났다.
따라서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니다.
그러나 나 어릴 때도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궁핍, 정신적 피폐는 여전했으며
그 고단한 시절을 어른들과 함께 겪으며 지냈다.
그래도 가장 참혹했던 50년대를 겪지 않아
생존의 큰 위협은 피할 수 있어 평생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이란,
유아기를 벗어나,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된
60년대 중반, 70년대 초반을 말한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가난한 시절이었다.
윗세대의 노력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우 세끼 끼니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밥을 굶는 사람들이 많았고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거지는 아니더라도 거지와 다름없이
쓰레기를 주워 연명하는 넝마주이도 많았다.
어린 우리는 그들이 무서웠다.
팔다리가 없는 전쟁 상이군인은 늘 술에 취해 있었으며,
우리는 애써 그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잘못하면 얻어맞을 수도 있었다.
좌절한 그들이 무슨 행동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그들을
어린 우리가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이중적이었다.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이라고 무한히 동정했지만
그들의 행패는 민폐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의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거리엔 또 다른 상이용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른바 월남전 상이용사들이었다.
그들은 6·25 상이군인보다 젊고 거칠었다.
그래서 더욱 무섭고, 동시에 불쌍했다.
남의 나라 전쟁에 가서 죽거나 팔다리를 잃은 그 사람들.
태어나기 전인 6.25 전쟁 상이군인들과 다르게
어렸지만 우리는 그 시절을 함께 살았고
기억 속에 그들은
이웃 형이고, 삼촌들이었기 때문이다.
피해 다니긴 했지만 절대로 밉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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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70년대는 그렇게 고단한 시절이었다.
혹시,
독자들께서 불편하시지 않다면 그 시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하는데,
괜찮으실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