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옆에 없다.
조용한 저녁이다.
3박 4일 일정으로 처가에 갔다.
처가는 대가족이었다.
장인께서 8남매 장남이시고 아내도 5남매 장녀다.
처가는
세월이 흘러 지금은 장모님 홀로 빈 둥지를 지키고 계시지만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늘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선대까지 외아들로 내려온 집안 출신인 나로선
결혼 초기, 여간 당혹스런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금세 적응하기는 했지만.
이제 구순이 되신 장모께서는
연세가 연세 인지라
몇 해 전부터 불편한 곳이 많아지셨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 부럽지 않은 건강을 자랑했었는데
세월이 야속하다.
인근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드님, 둘째 따님이 대단한 효자, 효녀여서
정성스런 보살핌은 받고 있으나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 중에서 안과 질환이 심각했다.
녹내장, 백내장으로 인해 앞을 거의 못 보셨다.
병원에서는 녹내장이 오래 진행되어
백내장 수술이 의미 없을 거라며 꺼렸다.
드라마틱한 개선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
다급함을 느끼고 떼를 쓰다시피 해서
며칠 전에 결국 수술을 받으셨다.
다행히 예후는 좋아 보인다.
먼 곳에 살아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건다.
전화가 닳는다.
언젠가,
아침, 저녁으로 처가에 들르는 처제 이야기를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누구는 좋겠다........”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괜히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멀리 살게 한 죄인.
그래서 이번 3박4일이 결정된 것이다.
막 수술을 끝낸 장모님을 잠깐이라도 모셔보겠다는 일념에.
오로지 홀로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내가 없는 첫날은 잠이 잘 안 왔다.
12시가 다 되어서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뭐 하십니까?”
싱거운 사람.
결혼하고 36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