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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중턱회?

by 신화창조
정상만세.jpg

30년 전, 90년대 중반, 산악회 회장을 한 3년 지낸 적이 있다.

당시 회사에는 여러 가지 취미 모임도 많았고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는 바로 산악회 때문이었다.

사주社主인 회장님이 산을 무척 좋아해서 산악회를 만들고,

산악회만 지원하면 아무래도 직원들 눈치가 보이니,


“너희들 원하는 대로 취미 모임을 만들어라. 지원해 줄게.”


이렇게 된 것이다.

우후죽순으로 각종 취미 모임이 생겼다.

축구회, 독서회, 외국어 공부 모임 등등...

겉으로만 보면 아주 좋은 회사 같았다.

문제는 이런 취미 활동은 일과 후 시간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취미 활동을 근무 시간에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른 모임은 불만 없이 일과 후 시간에 잘 진행되었다.

문제는 산악회였다. 무조건 노는 날 산에 가야했다.

그것도 전 직원이.

빨간 날 쉬지도 못하고 김밥 싸가지고 집을 나서야 하니 집에서도 좋아할 리가 없고,

등산 가는 날 휴일이 몽땅 없어지니 직원들 입이 닭 부리처럼 튀어 나왔다.


심지어 산 아래 집결 장소에서 출석까지 불렀다.

지각하면 어김없이 시말서 처분이었다.

오너가 아침 일찍 나와서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다들 죽상이었다.

점심은 무조건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오너가 참석하니 꾀를 부릴 수도 없었다.


이런 등산 활동은 입사할 때 이미 하고 있었다.

스물여섯 청춘일 때는 막내라는 이유로 오너의 등산 가방을 대신 메고 선두에서 첨병이 되어 올라갔다.

총각 시절에는 나쁘지 않았다. 하숙집에서 빈둥대느니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군대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은 귀신같이 잘 탔으니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서른이 넘어가니까 나 역시 억지로 하는 등산이 싫어졌다.


한마디로 운동선수 출신이라던 오너만 즐거운 산악회였다.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다 같이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는데,

오너는 젓가락을 들고 돌아다니며 김밥 하나씩 집어먹었다.


“우와! 이 김밥 맛있다! 집 사람에게 전해줘! 회장이 엄청 맛있게 먹더라고!”


집에 와서 이렇게 전했더니 그 다음부터 아내는 도시락을 세 개씩 싸줬다.

다만 모든 직원에게 똑 같이 말했다고는 전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오너가 50대에서 60대가 되고, 또...

오너가 등산에 자주 결석을 했다. 그 시기에 내가 회장이 되었다.

오너는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만, 기분 내킬 때만, 불시에 참석했다.

대신 그 다음 날 확인은 꼭 했다.

언제, 어디에, 누구누구가.

그래도 이게 어딘가.


빈틈이 생긴 것이다.


산악회장 3년 내내, 산악회는 중턱회로 변해 있었다.

오너 오는 날은,

총무부와 비서실이 미리 귀띔을 해 줬다.


억지로 나오는 산악회는 끝나 버렸다.

총무부까지 한편이 된 우리 직원들.


회장님!

요건 모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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