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의 안산은 지도 위에서만 도시였다.
원곡동을 제외한 곳은 아직 흙먼지와 개발을 예고한 말뚝, 그어진 선뿐이었고,
밤이면 바람소리조차 스산했다.
지금은 큰 번화가가 된 중앙동 등은 빈 땅에 불과했고
심지어 경찰서도 없어서 광명 경찰서가 관할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로 밤길이 무서웠다.
물론 큰 병원도 없었다.
훗날 들어설 고대 안산 병원, 한도 병원 등 대형 병원은 그저 꿈이었을 뿐이었으며,
원곡동의 의료기관도 산업도로에 의지한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만 번성할 뿐이었다.
원곡동 병원을 크게 거래하지 못하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무리 여러 번 방문해도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았다.
당시 안산의 정형외과, 신경외과의 원무과는 이른바 저쪽 세계의 형님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 분들 기준에서 내 모양이 전혀 동족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르고 안경 쓴 샌님 같이 생긴 인상 때문에 상대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덩치를 키울 수도 없는데 말이다.
고민 끝에 한 가지 궁리를 해냈다.
잠깐 안산을 담당했던 입사 동기 태호를 불러냈다.
태호는 100kg이 넘는 거구였다.
덩치만으로는 마이크 타이슨하고도 붙여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녀석이었다.
원무과에 입장한 태호는 대뜸, “형님!”하면서 들어왔다.
“얘는 내 친군데 잘 좀 봐주쇼!”
“얘가 니 친구냐?”
태호가 다녀간 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형님들이 말을 받아주게 되었다.
‘아~~ 일을 잘하려면 동족에 되어야 하는 거구나.’
태호가 하루 동안 안산을 함께 돌아 준 이후 길을 찾았다.
형님들의 도움 아래 원장님도 만나고 더 이상 밤길이 무섭지 않았다.
밤에 원곡동을 다니다가 어려운 형님들을 만나면,
“어느 병원 누구 동생입니다.”이라고 말하면 무사 통과였다.
어느 지역에서 영업을 하든 그 지역만의 특성이 있다.
그 특성에 적응하고 동화되어야만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35년이 지난 ‘대도시’ 안산은 어떻게 진화해 있을까.
언제 시간을 내서 한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