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보다 물이다.
물이 없으면 단 며칠도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문명은 물이 풍부한 큰 강 부근에서 시작되었다.
요즘이야 거미줄처럼 잘 연결된 수도가 있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옛날엔 물이 곧 부이자, 권력이었다.
그렇게 물을 다스리는 자가 큰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지배했다.
큰 강, 호수, 시냇물, 이런 것들이 주요 물 공급원이었다.
이런 것들이 없는 지역에서는 어떻게 물을 공급 받았을까.
그렇다. 지하수다. 지하수를 개발해 필요한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하수라고 아무 곳이나 파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맥이 지나가야 하고 그 깊이와 수질, 수량도 중요하다.
이런 모든 필요충족의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야 비로소 개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어진 지하수 공급원을 “우물”이라고 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여러 곳에서 우물을 볼 수 있었다.
운 좋게 마을 공동 우물이라도 있는 곳에선 그런 걱정을 덜 할 수 있었겠지만,
우물이 없는 가정은 우물이 있는 집의 “자비”에 기대어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물을 파는 사람도 있었고, 물을 길러다주는 직업도 있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물지게를 봤거나 알고 있는 세대는 어디까지 일까.
서너 살쯤 되었을 때던가. 우리 가족은 한 마당 깊은 집에 세를 얻어 살았다.
한약방을 하는 주인집과 몇몇 가정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마당에는 수량이 매우 풍부한 우물이 하나 있었다.
모든 세입자가 우물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살았다.
1965년쯤이었으니까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었고,
부채로만 더위를 다스릴 수 있던 시절, 우물은 아이들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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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굉장히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주인집, 셋집 아이들 구분 없이 어울려 우물가에서 발가벗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던 서너 살 아이들 틈에 나도 끼여 있었다.
아이만 누릴 수 있는 호사를 어른들은 먼발치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풍덩!”
한 아이가 우물로 떨어졌다.
내 또래 주인집 딸아이 순이였다.
두레박으로 장난을 하더니 순식간에 우물 속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마당의 아이는 네댓 명이었다.
일제히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순이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른들이 몰려왔다.
너무 무서웠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는 방으로 도망쳤다.
소란스런 밖을 뒤로하고 황급히 잠을 청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났을 때 순이가 전처럼 까불며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죽지 마라. 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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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다행히 순이는 어른들의 도움으로 두레박을 타고 올라왔단다.
정말 다행이었다.
며칠 동안 축 늘어져있던 순이는 다시 까불며 뛰어다녔지만
심하게 놀란 나는 그 때부터 우물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아무리 더워도 우물가로 가지 않으며 물과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누구든 유아기의 기억을 제대로 갖고 있지는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마당 깊은 집 우물의 기억만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죽는다는 것, 누구든 죽을 수 있다는 것,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한동안 나를 괴롭힌 원인모를 죄책감은 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