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늘 하던 달리기도 포기한 채, 뒷짐을 지고 거리를 걷습니다.
시월 말, 이 무렵,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가 옷깃을 스밉니다.
부지런한 늙은 마름이 쓸어놓은 아침 마당처럼 하늘은 높고 푸릅니다.
이 좋은 가을에,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구석이 헛헛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연륜을 쌓았지만 별 소용이 없네요.
문득 옛 인연들에 전화를 걸어 봅니다.
“별일 없지? 궁금해서 전화했네. 언제 한번 얼굴이나 보여줘.”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네요.
그렇게 걷다 보니 낯선 동네로 접어드네요.
약간 지친 기분이 듭니다.
공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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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그 질문에 선사가 되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 조주선사의 일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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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갈라지는 붉은 마음을 나도 잘 모를 때가 많지요.
그런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들은 내게 따듯했습니다.
“응, 그래. 잘 지내지? ... 힘들면 말해.”
“아니야. 그냥... 목소리 듣고 싶었어.”
싱겁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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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돌아가야겠습니다. 너무 많이 나왔나 봅니다.
가슴 속에 맴도는 알 수 없는 이 번민은 푸른 하늘가에 묻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좀 나아지겠지요.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아직 저는 제가 누구인지도 모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