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본사 재진입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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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신년 연휴가 끝나고 바로 구의동 본사로 출근했다.

안양 덕천마을 집에서 구의동까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였다. 버스를 타고 안양역에 나와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구의역까지, 무려 두 시간, 왕복 네 시간.

갈아타는 신도림역에서는 푸쉬맨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출근은 전쟁 상황이었다.

퇴근은 또 어땠을까.

저녁 술자리가 많은 직업 특성상 늦은 퇴근이 다반사였는데 출근보다 더 힘들었다.

지친 몸을 끌고 다시 두 시간.


‘아~~ 매일 이렇게 어떻게 사나.’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순응하고 살아야지.

일만 잘할 수 있으면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쁘게 버텼다.

그 시절 출퇴근 이야기는 다음에 한 번 더하기로 한다.

나야말로 출퇴근 산증인이니까 리얼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처음 들어선 서울 종합병원부의 시선은 썰렁했다.

아마 1990년 발령 거절이 컸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동기와 후배들은 따듯했으니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

같이 전근 온 인천의 동기 태호, 전주의 후배 수진이.

기존 동료들도 평소 총대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 온 나를 반겨주는 것 같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1992년 회사는 변화가 심했다.

자회사 합병으로 낯선 사람들이 여럿 진입해 있었고,

지방에서 새로이 영전해온 영업본부장이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나이가 서른아홉이라는데 상당한 파격이었다.

역시 K회장다운 인사였다.

나름 성공 사례를 일군 사람답게 직원들에 대한 압박이 엄청났다.

하고 싶은 게 많고 목표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훗날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본부장을 하며 깨닫게 된다.


그렇다. 일 못하는 리더가 쉽게 저지르는 실수를 그도 그때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리더십은 이후 많은 부작용을 만든다. 그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 난 이미, 입사 6년차, 대리 2년차, 종합병원 담당자 중에서 서열 1위였다.

그리 대단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당할 위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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