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 간지 1년이 지나 영등포 생활에 점차 적응되어갈 즈음,
다시 한번 종합병원부로부터 프로포즈가 들어왔다.
사실 그 전에도 가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약 영업의 백미라는 종합병원 경험을 나라고 왜 하기 싫겠는가.
단지 동고동락하는 동료, 선배를 단숨에 저버리지 못했고,
놓아주기 싫었던 점장님의 꼬드김에 그리 된 것이니,
모두들 내 처지를 이해해 이번엔 말리지 않았다.
편하게, 부담 없이.
늦었지만 의원 부서에서 정확히 5년을 근무하고 종합병원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바로 1992년의 일이었다.
의원 부서 5년. 시원함보다는 섭섭한 감정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었던 일도 많았는데 떠나게 되었으니.
몸은 힘들어도 성과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다.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라면 새로운 거래처 신규 개척을 정확히 200개 한 것이다.
어떻게 지금껏 그 숫자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을까.
종병 부임 일주일인가를 남겨놓고 세 보니까 객척수가 198개였다.
198과 200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198이 용납되지 않았다.
인수인계 와중에도 미친 놈 소리 들어가며 신규 하러 다녔다.
치기어린 짓(?)이었지만, 그 땐 그게 그렇게 절실했다.
종병 부임 하루 전, 결국 딱 200개를 맞췄다.
부족한 2개는 고객에게 거의 통사정하다시피해서 채웠다.
무리했다.
나는 왜,
아무도 봐 주지 않는 200개에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니,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업계 4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순간까지,
5년 만에 신규 200개 하는 친구는 볼 수 없다.
신규는 능력이 아니라 땀으로 일구는 것이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부끄럽지 않았다.
뿌듯했다.
신규는 프로 야구로 치면 홈런에 비견할 수 있는데 5년에 200개 홈런을 치는 선수는 지금껏 아무도 없다.
신규도 마찬가지다. 내 기억으론 없다. 들은 적도 없다.
땀.
서대문, 은평, 마포, 용산, 강남, 서초, 안양, 안산, 영등포, 동작.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지나온 동네는 골목 구석구석 다 외울 수 있다.
길을 잃어 가며 외운 동네 지리다.
뚜벅뚜벅 걸어 익힌 길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영업하는 사람의 권력은 실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감하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우리나라 나이 서른둘, 만 5년, 대리 2년 차, 상경한 지방 촌놈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업의 꽃, 종합병원 부서로 들어간다.
어깨 펴고 씩씩하게!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