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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지구 아파트 어린이 축구팀
“아지”(2)

by 신화창조

드디어 경기 당일.

우리에겐 작은 난관이 하나 더 있었다.

어른들은 우리의 계획을 모른다.

알게 되면 참가하지 못하게 할지도 몰랐다.

몰래 나가야 했다.


모두가 잠든 일요일 새벽.

살짝 장롱 서랍을 열고 하얀 운동복을 꺼내 집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아침도 거른 채 아파트 앞에 모였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니 20원이 나왔다.

소라빵 두 개.

그걸로 12명이 나눠 먹고

고고씽! 신암국민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 좋게도 예선 1회전 부전승.


2회전 상대는 중앙 조기축구팀.

우리는 5학년이 주축인데 상대는 대부분 중학생이었다.

키도 크고, 유니폼도 멋졌다.

우리는 그냥 체육복 차림.

살짝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우리 팀에 신천국민학교 정규 축구부 주전 골키퍼가 합류했다.

6학년 형이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살던 형은 놀러 왔다가 우리의 사연을 듣고 갑자기 함께 뛰기로 한 것이다.

신천국민학교 축구부는 당대의 강호였다.


와~! OK!

어디 한 번 해보자!

나는 원래 골키퍼였지만 수비수로 빠졌다.

어린이 축구.jpg

결과는 4대 0, 완승!

축구부 6학년 형의 눈부신 선방 덕분이었다.


한 판 이기고 나니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다.

아~~ 그런데 배가 고프다.

물로 허기를 달래고 준결승에 돌입했다.


상대는 명지 팀.

거의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악착같이 버텼다.

중등부로 나간 동네 형들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결국 또 승리!


그런데

아~~ 정말 배고파 죽겠다.




그 시각, 우리 아파트 5동은 난리가 났다.

일요일 아침, 5동 아이들이 몽땅 사라졌으니 말이다.

수소문 끝에 상황을 파악한 어른들은

우선 5동 5호에 사시는 고모부를 운동장으로 급파했다.


고모부가 도착한 건 준결승이 한창이던 때였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싸우는 우리 모습.

그 장한 광경을 보셨다!


점심시간.


경기가 끝나고 고모부는 우리 12명을 데리고 학교 앞 빵집으로 갔다.

하지만 돈이 넉넉지 않으셨던 지라

조그마한 빵 하나씩만 각자 입에 물려 주셨다.

12명을 전부 책임지시기에는 힘드셨겠지.

다행히 크게 혼나지는 않았다.


곧이어 어머니들이 도착했고

배고픔과 서러움이 겹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머니들은 고모부와 달랐다.

각자 자기 자식들만 데리고 근방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엄마와 고모님은 나와 한 학년 아래인 고종사촌 동생을 데리고 중국집으로 갔다.


짜장면.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이었다.

고명으로 오른 오이마저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를 그릇에 파묻고 걸신들린 듯 짜장면을 흡입했다.


그리고 오후, 결승전.


배가 부르다.

어머니들이 지켜보고 있다.

우승 트로피보다 2등 축구공이 더 탐났다.

우린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이건 고무공이 아니라 정식 시합용 축구공이다.

오후에 훈련이 있다며 골키퍼 6학년 형은 떠났고

그 자리에 나는 다시 골키퍼로 섰다.


결과는 2대 0 패배.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배부른 우리는

축구공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어머니들과 함께

아파트로 돌아왔다. 끝!

어린이 축구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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