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1972년 모월 모일 모시(일요일)
장소 : 대구시 동구 신암 국민학교 운동장
내용 : 지역 축구 대회
참가 자격 : 중학교 2학년 이하 어린이 조기 축구부
참가비 : 500원
상품 : 우승 트로피, 준우승 축구공
납부처 : 신암 국민학교 앞 △△문구점
* 참가를 희망하는 어린이 축구팀은 대회 전날까지 문구점에 참가비를 납부하고 등록하기 바랍니다.
1972년 따듯한 초여름 어느 날, 이런 공지문이 학교 앞 운동장에 걸렸다.
신암 국민학교는 바로 옆 동네 학교다.
우리는 대구에서 최초로 생긴 10평짜리 서민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다.
베이붐 세대답게 한 집에, 6~7인 가족이 함께 지내도 아쉬운 줄 몰랐다.
아파트 전체가 다 그렇게 사니까 부러운 집도 없었다.
우리 아파트 이름은 ‘신천 지구 아파트’다.
우리는 5동에 산다.
그 공지문을 읽은 5동 애들은 모두 한 입으로 ‘와~’하며 함성을 질렀다.
우리의 소원은 제대로 된 축구공을 갖고 축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 황제 펠레(브라질)가 산토스 팀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와 국가대표 청룡 팀과 붙어서 갖은 묘기를 다 보여주는 등 당시의 축구 열기는 대단했다.
우리는 금방 터져버리는 고무공으로 온종일 축구를 했다.
공이 터지면 바람이 빠진 채로 계속해서 공을 찼다.
터지지 않는 공으로 축구 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었다.
마침 이런 절호의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5동 아이들은 이심전심 의기투합했다.
의논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엄청난 난관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우선, 참가비 마련 문제,
당시 500원은 우리에게 엄청난 금액이었다.
한 달 내내 몇십 원 만져보기 힘든 달동네 애들이 그걸 모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또, 참가비를 모으려면 어른들에게 말씀드려야 하는데 말했다가는 돈은커녕, 매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마도 참가 자체를 못하게 하실 거다.
그러나
애들의 장점이 뭐겠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뒷생각 안 하고 떠밀고 가는 것.
우선 내가 총무가 되어 돈을 추렴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제대로 된 팀이 아니었다.
5동 애들끼리 모여서 공차는 무리들?
그런 정도였다.
우선 팀명을 정해야 했다.
우리 아파트는 7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면에도 신천 지구 아파트, 뒷면에도 신천 지구 아파트 글자가 동마다 한 자씩 쓰여 있었다. 우리 5동은 앞에 “아”, 뒤에 “지” 자가 쓰여 있었다. 그대로 그냥 정했다. “아지 어린이 축구팀”
“오~ 괜찮은데!”
나중의 일이지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어른들이 많았다.
우리가 그대로 대답하면 많이들 웃었다.
당시에는 “청룡”“중앙”“화랑”등 아주 전형적인 이름이 대부분이었고 우리 같은 팀명은 아예 구경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좀 멋있지 않나?’
애들은 얼추 11명은 되니까 그대로 선수 구성은 끝났고 매일매일 연습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하지만 돈 모으는 게 힘들었다.
한 달쯤 시간이 있었는데 그놈의 500원이 환장하게 모이지 않는 거다.
나도 어떻게 저떻게 끌어모았는데 40원이 한계였다.
드디어 대회 하루 전날,
총 모인 돈 450원.
더는 힘들다. 모두 눈망울만 동글동글.
방법이 없었다.
‘아~~ 이대로 끝인가…….’그런데도 포기하자는 녀석이 없다…….
바로 그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우리 5동에 다른 학교에 다니는 관계로 우리랑 잘 놀지 않는 애가 하나 있었는데(아마 시내 사립학교에 다니는가 그랬다.)
그 아이 엄마가 어떻게 알고 우리를 찾아오셨다.
말씀인즉슨,
“우리 애가 하교하면 놀 애가 없다. 그래서 힘들어한다. 너희들이 같이 놀아주면 좋겠다. 우리 애는 축구를 잘 못 한단다. 그런데 너희들 무리에 끼여서 놀고 싶단다. 주전자를 들려도 좋다. 모자란 돈은 채워 줄 테니 안 되겠는가?”
“우와~~~”
“안 될 게 뭐 있겠습니까! 환영입니다.”
우리는 마감 몇 분을 남겨놓고 바람처럼, 쏜살처럼 달려가 당당히 500원을 납부했다!
***
이거 너무 길어서 2편으로 연장해야겠습니다.
드디어 대회 당일입니다!
좌충우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경기에 나설지, 어떤 사연을 만들어낼지, 어떤 성적을 낼지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