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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본 Nov 10. 2020

엄마의 숟가락

짐을 정리해서 친정엄마 집으로 향한다. 옷가지와 책만 챙겼는데도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내 차 안에 가득 실었다. 짐을 챙길 때도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였다.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도망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쉽거나 슬프진 않다. 내가 할 일을 다해서 후련하다. 다만, 아들에게 떠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내가 오는 날인 것을 알고도 엄마는 일하러 가셨다. 늘, 엄마는 그랬다.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 해 살아오신 엄마는 내가 따뜻함을 느끼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엄마 자신을 희생하고 잘 키워 주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엄마는 나보다는 일이 먼저고 나보다는 돈이 먼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한편으론 맘이 아프다.     


차라리 엄마가 집에 안 계시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사용하다 남은 식용유, 고춧가루, 간장, 쌀, 세제 등등. 초라한 옷가지들, 올망졸망 종이가방과 비닐봉지 속 물건들. 다 버려도 시원치 않은 물건들을 못 버리고 꾸역꾸역 챙겨 왔기 때문이다. 허리도 구부정하고 다리도 휘어진 엄마가 이혼한 딸의 짐을 옮기는 것을 안 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위로한다. ‘왜 이렇게 짐이 많냐? 저런 것은 뭐하러 가져왔다니?’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씀이지만 때론 잔소리로 들려서 듣기 싫다. 그분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 내색은 할 수 없다.   


저녁때, 엄마가 잔뜩 지치고 기운 없는 얼굴로 돌아오셨다. 안쓰럽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또 내일도 일하러 가야 한다고 하셨다. 다음날도 엄마는 일하러 가셨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가셨다.     

엄마는 그랬으니까. 엄마는 자주 나를 서운하게 했으니까. 친정에 가고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하면,

“뭐하러 오려고 해. 교통비 들고 너도 힘들게.... 엄마 일하러 가야 하니까 다음에 와라.”

어쩌다가 친정집에 왔다가 가는 날에는 “엄마 일하러 가야 하니까 너 혼자 있다가 갈 수 있지. 집에 가는데 배웅 못 해서 미안해”

이럴 때마다 거절당한 기분이 들곤 했다. 엄마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맘대로 응석을 부릴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되고 만다. 늘 그랬으니까 다 이해하고 나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번은 아니었다. 나도 힘들어서 엄마를 이해하기가 너무 버겁다. 


어젯밤 엄마가 깔아 준 새 이불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잘 빨아 놓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쌓아 놓아서 그랬던 거 같다. 80이 넘은 노인이 무거운 이불을 햇빛에 내다 말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고 이불솜은 햇빛에 내다 말리고 이불 커버를 빨려고 세탁기를 열었다. 세탁기 먼지 필터를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사용한 지 10년이 넘은 세탁 필터를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듯 필터에 꽉 들어찬 먼지와 눌어붙은 때가 벗겨지지 않았다. 혼자 사시는 엄마를 그동안 너무 돌보지 않았구나. 그냥 와서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가기 바빴지, 청소 한번 제대로 해드린 적이 없었구나.    

늘, 엄마는 그랬다.  자신의 쌈짓돈 안 쓰고 모아서 목돈 만들어 미리 엄마의 병원비까지 자식들에게 나눠주실 정도로 자식들에게 부담 안 주고 사셨다. 엄마 혼자 치과에 가서 새로 한 틀니가 맞지 않아서 밥을 제대로 못 먹을 때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녹내장 수술도 혼자 병원 가서 하셨다. 항상, 그래 왔기 때문에 엄마는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옛날 시골집에서부터 사용하던 볼 품 없는 숟가락을 아직도 사용하고 계셨다. 그게 가볍고 사용하기 좋다고. 그 숟가락만이 엄마와 항상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숟가락이 엄마의 삶의 일부분이 된 거 같다. 밥상 앞에 깔려 있던 낡아 터진 방석을 꿰매어 사용하고 있었다. 나중에 자식들 오면 고기 구워 준다고 인덕션을 사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인덕션에 맞는 반듯한 프라이팬 하나 변변히 없으면서. 자식들 오면 좋은 이불에서 덮게 해 주려고 쓸만한 이불을 꽁꽁 싸매 놓고 아끼면서 엄마는 솜이 다 죽은 얇은 이불 덮고 주무신다. 자식들이 사 드린 침대도 있는데 전기장판 깔아 놓은 바닥이 따뜻해서 더 좋다고 거기서 초라하게 주무신다.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 바싹 마른 잎사귀 몇 개가 바람에 흔들거리듯 엄마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그런 엄마를 잘 알고 있기에 서운해하는 것조차 나에게 사치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세탁기 안부터 청소하기 시작했다. 베란다 선반에 쌓여있는 물건들 정리하기, 신발장 정리하기, 엄마가 저녁때 돌아오기 전에 마치려고 하다 보니 정신없이 집안을 청소했다. 엄마도 모르는 쟁여 놓은 물건들과 먼지가 구석구석에 박혀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짐 정리와 청소를 하다 보니 모든 힘이 빠져 나도 지칠 대로 지쳤다. 저녁때 지쳐서 돌아온 엄마를 보자 화가 났다. 잔뜩 피곤에 절어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저러는 걸까? 자식들이 매달 드리는 용돈으로 살아도 되는데 그렇게까지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야 하나? 밖에 일로 지쳐서 딸에게 줄 수 있는 따뜻한 위로의 시간과 에너지가 소진된 엄마의 모습이 싫다.   

 

“너한테 미안하다. 내일도 모레도 일하러 간다고 약속했다. 일거리 있을 때 해야지.... 이틀만 참아라.”

“미안해? 미안하면 미안해서 나오는 행동을 해야지. 미안하다면서 미안한 행동을 계속하는 건 미안하게 아니야. 그리고 뭘, 참아?” 나는 결국 누르고 있던 화를 쏟아냈다.

“일 한다고 약속했는데 못 지키면 그 사람한테 엄마가 신용 없는 사람 되지 않니.”

“엄마, 지금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 그렇지 않잖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내가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원하는지 알아? 어쩌면 엄마는 이럴 수가 있어. 이틀 후에 일 다 하고 와서 나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소용없어. 이미 엄마는 나보다는 돈을 먼저 선택했으니까. 아무리 잘해줘도 나에게 소용이 없어.” 그리고 과거에 내가 느꼈던 서운한 맘을 엉엉 울면서 다 털어놨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엄마 마음 아프라고 하는 게 아니야. 언젠가 엄마가 후회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야. 나중에 돈 못 벌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겠지. 언젠가는 내가 왜 그때, 딸에게 서운하게 했을까를 후회할 거야.”

결국, 엄마는 다음날 일을 안 가셨다. 

“왜, 일 안 갔어? 가지 그랬어?” 

“그래야 맞는 거 같아서 안 갔다.”    


아들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안하다며, 미안한 사람의 태도가 이래? 이건 미안한 게 아니지. 미안하면 아무 할 말이 없어야 해.”

아들이 나를 멈추게 했듯이, 나도 엄마가 자신을 볼 수 있게 멈추게 했다. 비록 아픈 시간이었지만 아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었고 나 자신과 같은 입장인, 엄마가 어떤 마음인지도 잘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달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우리는 줄 사랑이 없다. 삶의 무거운 짐 속에 파묻혀서 나 자신도 자신을 사랑할 시간도 없이 허덕이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이 있는가?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이,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그 눈과 귀가 없다.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마감할지를 생각한다면 지금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한 어느 노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하십시오-찰스 스펄전]    

해야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이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 모릅니다.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보여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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