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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Nov 22. 2023

80대 노부부의 현실대화

- 일상 말다툼 -

차곡차곡 일상


며칠 전 전화벨이 울렸다.

부 : "어디냐? 이번주 일요일 별일 없냐?"

나 : "네, 아부지."

부 : "엄마 바꿔줄게."

모 : "시간 됨 와서 김치 가져가라."

나 : "엄마 힘든데 뭐 김치를 하셨어?!"

모 : "응 했다"

나 : "아무튼 갈게요."


세 명의 통화내용. 다 합쳐도 두 줄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부지와의 대화는 술이 있어야 맛이 깊어지고 엄마와의 대화는 2분을 채 넘지 않는다.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정도다. 1년 넘게 심하게 아프신 후로 그나마 남아있던 청력도 그리 좋지 못하다. 대화가 잘 안 된다는 나의 답답함만을 생각했지 엄마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가장 힘든 건 엄마일 텐데...


워낙 고집이 세 보청기 권유를 듣지 않았던 울 엄마가 보청기와 같이 생활한 지도 벌써 몇 달이 되었다. 보청기를 끼는 가장 큰 이유! 아부지와의 소통을 위해서다. 80대 중반인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부부싸움을 하시는 두 분. 좀 더 원활한(?) 다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두 분 얼굴을 뵈니 그냥 기분이 좋다.

내 눈길이 엄마의 귀와 입으로 향한다. 완전 적응하신 건 아니지만 입모양이 아닌 소리로 알아들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반가운 아부지 엄마 옆에 반가운 게 또 있다. 바로 배추김치. 허리 아프고 힘든데 무슨 김치를 담그셨냐고 볼멘소리로 얘기했지만 속으론 내심 좋았다. 오랜만에 흉내 불가능한 엄마의 김치를 맛볼 수 있으니. 이 김치 정말 세상 최고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키 작은 뽀글 머리 아줌마이자 따뜻한(?) 다혈질 김여사다. (객관적으론 할머니이나 나한텐 영원한 아줌마임)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아부지와 사흘이 멀다 하고 다투신다. 우린 중재위원이 되고. 이젠 안다. 이게 우리 부모세대의 대화법이라는 걸.


그런 엄마가 김치를 담그는 이유는 단 하나!

"느 아부지는 내 김치 없으면 밥 못 먹어." 그렇게 투탁거리시면서~ 참 아이러니하다.


매일아침 6시 식사 후 남편을 출근시키고, 매일 낮 밥 먹었냐 딱 한마디 묻기 위해 아내에게 전화하며, 매일밤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 이 부부! 60년을 같이 산 소회를 묻자

"니네 없음 벌써 헤어졌다." 울 엄마다운 답변이다.


80대 노부부의 일상 말다툼(=> 현실대화)이 오래오래 계속되길 바란다. 지금처럼! 


아무튼 울 아부지 덕에 나도 김치 득템이다.


* 오늘의 단어는 부모님 りょうしん(료~시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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