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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Apr 01. 2023

어쩌다 탄생! 깻잎버거

- 탄생배경은 (갖고) 있는 게 없음에서 -


차곡차곡 일상~


우리 집 냉장고는 늘 비어있다. 냉장고는 꽉 차야 맛이라는데 난 가득 채운 냉장고를 들여다보면 답답함을 느낀다. 애들(재료들)이 자리가 비좁겠는 걸~ 언제 다 먹나~ 이런 생각을 하며. 그렇다고 항상 깨끗하게 정리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없어서 깨끗해 보일 뿐이지. 다른 집안일도 그렇다. 꾸미고 달고 위치를 바꾸고 이런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지라 정말 내추럴함을 느낄 수 있는 집이다. 이를 보고 덜 친한 이는 담백하다 하고, 친한 이는 뭔가 사주고 싶다고 한다. 채움보단 비움을 더 좋아하는 나에겐 둘 다 칭찬으로 들린다. 그래도 제때제때 식구들 밥은 굶기지 않으려 애쓴다.


아무튼~

식탁 위의 모닝빵이 보인다. 오랜만에 빵을 구워줘야지 -> 아, 갈아놓은 고기를 끼워 넣을까 -> 그럼 야채를 넣어야겠네 -> 그래 오이도 넣자(없으면 상추로 때우고) -> 마지막에 사과도 얇게 썰어 넣자. 

신나게 플로차트를 그린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알게 되었다. 갖고 있는 재료가 거. 의. 없음을. 잘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사 올까 잠시 망설이다 그냥 go~. 해물동그랑땡, 버터, 케첩, 딸기, 깻잎. 내가 찾은 재료들이다. 조금 전의 프로차트를 떠올리며 각각의 위치에 대체재를 대입해 본다. 음~그리 나쁘지 않을 듯.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버터도 듬뿍 바르고 케첩도 두 배, 조그만 모닝빵에 깻잎을 세 장씩 끼워 넣는다. 그 옆에 딸기까지. 가히 화룡점정이다. 


뿌듯한 마음에 부드럽게 남편과 아이를 부른다. 속으론 어쩌다 탄생한 깻잎버거가 살짝 신경 쓰이긴 하지만. 외강내유의 자세로 앉아 반응을 살핀다. "음 맛있다~깻잎을 넣으니 한식버거 맛이야!" "이걸 엄마가! 이걸 와이프가!" 이하 생략^^


궁하다, 궁핍하다는 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그 과정이 좀 힘들 뿐이지. 몇 번의 힘듦이 있었다 나에게도. 


첫 번째는 대학 입학하고 나서다. 잡초처럼 커야 한다는 울 아.부.지. 교육방침에 따라 3월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는 어려운 형편이라는 울 아부지의 에둘른 표현이었다.  

두 번째는 2002년 즈음. 8년 만에 선물로 온 아이가 내 뱃속에 있을 때다. 당분간 월급을 못 갖고 올 것 같다는 남편의 불길한 예감이 꽤 오랫동안 확신으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

세 번째는 작년 아이가 재수했을 때다. 엄밀히 따지면 이땐 경제적인 궁핍보다는 심리적인 '궁함'이 더 맞을 것 같다. 일이나 사정이 난처하거나 막혀 피할 도리가 없다는 사전의 뜻풀이가 이리 심금을 울릴 줄이야~

네 번째는 오늘! 재료가 궁해 있는 것 없는 것 다 긁어모아 어쩌다 깻잎버거를 탄생시킨 바로 오늘 말이다. 

 

사실 네 번째는 1~3번에 비하면 궁핍 축에도 못 끼지만, 공통점을 찾자면 때론 궁핍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것! 헤쳐나갈 힘을 주니 말이다.


요즘 '인생 네 컷'이란 속성사진이 인기더라. 몇 분만에 촤~악 포즈별로 내가 표현된다. 슬그머니 궁핍했던 그때의 장면들을 한 컷 한 컷 담아본다.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또 다른 궁핍이 오면? 음~ 그땐 인생 여덟 컷이다 하하~^^


P.S. 인생 네 컷~앞으로 이야기해 나갈 주제이기도 하다.


* 오늘의 단어는 인생 じんせい(지ㄴ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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