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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Jan 19. 2020

치열한 밥상머리 설전

모두 자기만 논리적이라고 할때 생기는 일

논쟁의 승패를 결정하는것은 주장이 논리적일때 가점하고, 비논리적일때 감점해 얻은 스코어의 합산이 아니다.

웬만한 성인이라면 모두 자신의 주장을 나름의 논리로 풀어서 피력한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자체가 상대에게는 허위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럴땐 아무리 일목요연하게 풀어도 비논리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상대가 나의 놀라운 논리를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분노가 일고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거기다 날 괴롭히려고 저런다는 피해망상과 같은 상처를 주겠다는 저연령식 사고에 몰입하다 보면 종국에는 양쪽 다 이성을 놓아버리는 개싸움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상대의 논리에 스스로 납득당하면 호탕하게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승패도 있지만 주로 먼저 감정의 지배를 받아 폭주하는 쪽이 암묵적인 패자다.

참을성과 냉정은 감정이 사고회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브레이커다. 논리를 상대가 이해할때까지 관철시키면 승리하고 그걸 못참고 감정이 개입해 이성이 무너져내리면 질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집에서는 논쟁이 많이 일어난다. 정치, 경제, 사회, 일상생활, 그리고 먹거리 모든것이 논쟁거리다. 그런데 건전한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 집은 상대의 얘기는 깊이 안 듣고 서로 자기 얘기만 주로 밀어 붙이기 때문에 위기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표정이 심각해지고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남들이 볼때 열심히 싸우는줄 안다. 싸우는거 아니라며 방어해 보지만 은근 진짜 싸울때도 많다.


이런 논쟁사랑가족에게 좋은 불씨가 떨어졌다. 내가 완전채식이 되어 가족의 보편타당한 식생활과 결별하게 된 것이다. 좋은 타겟을 발견한 가족들은 돌연 영양학 박사가 되었고 틈만나면 내 식사관의 오류를 입증하려고 혈안이 되어 언제든 바로 설전에 들어갈 자세를 취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굳이 찾자면 가족은 식물도 먹힐때 고통을 느끼니 채식과 육식의 살생이 다르지 않다는 도발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사회에서 그런 순수한 도전을 많이 받은거 같다.

'풀도 뽑으면 아야해' - '아, 쫌'

참고로 난 식물은 감각뉴런(nociceptor)이 없기 때문에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여도 그걸 통증이라 치지않는 냉혈한이다. 그런데 만약 식물의 아픔까지 공감하는 감수성 여린 이들이 있다면 나보다 더 채식이 필요해 보인다. 고기 1kg를 얻기 위해  무려 6배 많는 곡물 사료 6kg가 학살(?)되기 때문이다. 


가족 중 그나마 무색 무취한 심판자를 자처하던 내가 좌우 어느 한쪽으로 진입해 포문을 열어 보니 차분하고 냉정하게 임하라는 이론적 승리법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지 실감하게 되었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매우 견고한 철옹성 같을땐 차분하게 한겹한겹 시간을 들여 벗겨가며 풀어야 한다. 하지만 실전에선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당황해서 말이 꼬이고 상대가 그걸로 역공을 하면 감정의 폭풍우에 주화입마 해버려 머리 뚜껑은 어느새 날아가고 없다. 그나마 있던 논리고 뭐고 어느새 과장과 인신공격까지 더해 무조건 이기는 것에만 몰입한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그땐 뭐가 그리 억울했던건지... 욱하면 지는건데 참 많이도 졌다. 중도라고 늘 뒷짐지고 관망하다 실전 경험을 쌓지못해 더 그런듯하다.  


현재까지는 윤리, 환경, 건강 세개의 축이 어떤 도전으로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지 채식교를 믿는 것이 아니다. 채식은 종교가 아니라 내 관점보다 더 상위의 논리적 근거에 납득당한다면 언제든 받아 들일 수 있다. 완전채식이 답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걸 인정하는 것이 내 존재를 위협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거 아님 절대안되라는 마음으로 합리적인 도전을 거부하고 부정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크게 사기 당한 사람들의 반응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실 부정을 요즘은 정치권에서도 드물지 않게 본다.  


지금은 감정조절할 줄 알고 내 논리를 상대가 납득하지 못하면 무엇이 근거가 부족한지 다시한번 돌아보고 명료하게 전달되지 못했던 점을 정비해서 다음을 대비하는 여유가 생겼다. 맷집이 붙은 것이다.

 그래서 인지 요즘은 파이팅 넘치게 설전을 벌이는데 승률이 나쁘지 않다.


승률이 높다는건 내 생각이고 호적수이신 아버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나와 아버지의 논리적 대립은 늘 평행선이다.

 하지만 가족끼리 논쟁의 묘미는 짧은 스파링이 끝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뒷끝이 없다.

격하게 옥신각신 투닥거리다가도 누군가 티비를 틀면 방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합심해서 특정 정치인이나 저드(저녁드라마)의 못된 사모를 맹비난한다. 건강자부 육식옹호자 아버지와 건강추구 완전채식인 자식은 노선은 다르지만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밥 잘먹고 지낸다.


다음은 별일없이 법먹다가 툭 던진 말이 불쏘시게가 되어 음식과 건강을 총 망라해가며 활활 불타게 벌인 설전의 일부다.  

내 논리가 좀더 미화되고 객관적으로 근거로 보완된 것은 평소 치열하게 전투를 대비해두어서 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글쓴이가 그다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버지는 동일한 나이대 남성이 모두 가지고 있다는 양성 전립선 비대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계신다.




아버지 red  vs 나 blue


약을 먹으나 안먹으나 밤에 꼭 한번씩 화장실가려고 깨. 그러니 내가 전립선 약을 먹을까 안먹을까 고민이 되잖아? 그걸 의사에게 얘기 했더니 약을 좀 줄여준다고 하네. 그러면 안먹어도 되지 않을까?


뭐 그럴수도 있죠. 그런데 아버지가 원래 약 먹는거 별로 않좋아 하시잖아요. 이 참에 우유를 한번 안드셔 보는건 어때요? 우유와 유제품에는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그게 전립선 비대나 암과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하네요.

  

그런 말 첨듣는데? 근데 우리는 예전에 우유를 많이 못먹었는데 예전부터 우유를 먹어오던 서양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살잖아. 우유먹어서 그런거야.


정말 그럴까요? 우유가 들어오기전에는 625이전엔 원래 식량도 부족하고 자연재해, 전쟁같은 외부요인때문에 오래 못산거지 우유못먹어서 그런거 같지는 않은데.. 게다가 지금 보면 일본 우리나라가 미국 보다 평균수명이 높잔아요. 미국이 지금 우유를 덜 먹어 그런거 같지도 않고.  


(당황)아니 내말은 우유를 먹으면 뼈가 튼튼해진다는 거지. 칼슘의 보고아냐, 칼슘!

내 나이에 칼슘 챙겨먹지 않으면 골다공증 오고 뼈약해지면 골치아파요


아버지, 집고 넘어갈게 있는데 우리가 우유를 먹으면 뼈가 튼튼해진다고 알고 있지만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아요. 스웨덴에서 대략 10만명이상을 20년간 관찰한 연구가 있는데 우유를 많이 먹을 수록 오래 못살거나 골절되는 위험이 더 높았다니깐요.[참고 BMJ 2014;349:g6015]

우유섭취와 사망/골절의 연관관계


뭐? 복잡한 연구 그런건 난 잘 모르겠는데 여튼 그건 그렇다고 치는데, 그럼 칼슘은 어디서 얻을건데? 우유처럼 칼슘 농도가 높아야 흡수가 잘되는데 그런 음식이 어딧냐는 거지


무조건 칼슘을 많이 먹어야 많이 흡수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거에요. 심지어 우유의 산성 단백질은 뼈에서 칼슘을 빠져나가게도 해요.여러 자연식인 시금치 배추 근대같은  녹확색 채소, 그리고 콩에도 칼슘이 있어요. 게다가 먹는것과 운동도 칼슘흡수에 영향을 미쳐요.   [참고 : Dr. Campbell - Nutritionstudies.org]


이구, 너도 나이들어봐라 그런거먹고 칼슘이 올라가나 (갑자기 약한모습)


침팬치보세요. 우유 한잔 안마시고 주로 자연 채식을 하는데 뼈가 그렇게 튼튼하잖아요. (물론 사람인 저도 골다공증 없구요) 


뭐 그 동물들은 진화적으로 식물에서 칼슘을 얻는 유전자가 생겼겠지 (강한의심)


침팬치와 인간은 디앤에이가 99프로이일치하는데 인간에게 없는 그 칼슘획득 유전자가 침팬치한테만 기적적으로 생겼을까요?


(논점 급전환)여튼 난 우유를 먹으니 건강해지는 거 같다니깐

게다가 봐봐. 모든 의사들이 우유먹으면 좋다고 그렇게 얘기 하잖니? (권위에 기대기 시작)


(제가 말하는건 왜 안 믿으시고... ) 성인 인간이 송아지가 단기간 먹는 유즙(우유)을 불필요하게 섭취해서 생기는 신체의 영향은 따로 연구나 조사를 하지않으면 알기 어려워요. 의대수업에도 우유의 생산이나 성분에 대해  별도로 배우지 않으니 의사라도 그냥 일반상식적 설명을 하는 경우가 더 많구요.


 

에헤이, 그건 잘 모르겠는데 뭐 내가 우유를 엄청 많이 먹는 것도 아니잖아. 우유 쬐끔  하루 한잔만 먹는다니깐 (억울모드)


우유를 꼬박꼬박 하루 한잔씩 꼭 드시는데 거기다가 마시는 요거트도 한병씩 매일 드시잖아요. 아까 아이스크림 콘도 드시던데..

요거트도 아이스크림콘도 다 우유로 만드는데 유제품도 모두 우유양에 포함해서 계산하셔야죠.


요구르트는 건강식이잖아. 불가리아 사람들을 봐 얼마나 오래사니 그건 하루 한잔 요구르트 먹어서 그래. (이건 방어 못하겠지)


아버지 불가리아 사람들이 마시는 요구르트는 우리가 마시는 불가리스가 아닌걸요.

그리고 요구르트가 문제가 아니라 불가리아 장수촌 사람들은 먹는 음식이 모두 자연식일 뿐더러 활동량도 높아서 하루종일 앉아서 인스턴트나 가공식 비중이 높은 우리랑 애초에 비교상대가 아니라구요. 설탕이 10g씩 들어있는 불가리야풍 요구르트도 물론 다르지만 요구르트를 뺀 모든것이 달라요.[참고 장수식 이야기]


(화제 급전환)근데 남자들은 다 전립선 비대가 있잖아 내 나이대 전립선 안가진 사람이 없더라. 그럼 그게 다 우유때문이야?


뭐 나이들면 전립선비대증이 많아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증상이 크지 않은 어르신도 계시잖아요. 전립선비대가 모두 우유먹어서 생겼다고 도맷금으로 넘기면 안되죠. 하지만 그래도 우유섭취 비중이 워낙 높은데 건강에 나쁘다는 연구결과도 많아 지고 있으니 말씀 드리는 거죠. 밤에 깨시는거 불편하시기도 하시니 우유 줄이시는거 어때요?


아니 난 증상이 심한 것도 아니야. 밤에 한번 깨는건데 불편하지도 않아. 나 정도는 매우 준수한거야.


우유 안먹어도 아무 효과가 없는 거 같으면 또 다시 먹으면 되잖아요. 좀 줄여보고 나서 ...... (아버지! 어디가세요?)


-----------[자리에 이미 없음]





아버지는  유제품을 사랑하기 때문에 애초에 밀리지 않기로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셨다.

우유와 요거트를 내려 놓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 어떤 논리로도 뚫을 수 없는건 사랑이다.

 

원래 무언가를 사랑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건 아니지만 우유는 사랑받는 조건을 여러가지 가지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일단 송아지가 빨리 성장하는 것을 돕는 음식이다 보니 지방, 단백질이 응축되어 고소할 뿐아니라 케이조 몰핀같은 물질덕에 더욱 우유와 유제품을 멀리하기가 어렵다.  [우유를 떼기 어려운 이유]

거기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건강효과 상식과 결합해 우호적인 인식이 너무나 깊게 뿌리박혀있어 웬만해서는 뒤집히지 않는다.



음식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 분야다. 음식에는 맛 뿐만아니라 같이 먹었던 이들과의 추억, 분위기, 감정, 인간관계같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론을 앞세운 논리싸움은 아무 의미없는 짓이다. 아버지는 내가 암만 얄짤없는 근거로 무장해도 사랑이라는 철갑을 둘러 사수에 성공했다.

물론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음식을 자식인 내가 감히 먹으라 마라 결정할 권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아버지는 내 돌진에 당황하시자 승부에 집착하신 나머지 전립선 증상이 별로 없다고 선언하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자주 건강과 관련해 이런저런 불편한 점을 나와 상의 하시곤 하는데 전립선증상 문제는 당분간 나에게 말꺼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덧 우유에 대한 추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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