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인간을 제외하고 비만한 동물을 본 적있는가. 사자나 치타야 매일 사냥하느라 날렵하다 치고 매일 느릿느릿 풀만 뜯어 육중한 코끼리도 스스로 일어나지 못해 크레인을 부르는 경우는 없다. 나의 이런 지적에 아는 동생은 인간만 살찐거 아니라며 집안의 개, 고양이, 동물원의 동물 그리고 축사의 돼지들 살 찐거 많이 봤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예외라고 든 동물들이 모두 인간의 손을 탔다는 공통점이 드러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쯤되면 인간은 스스로 뿐만 아니라 손길이 닿은 주위 짐승들까지 망치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게 분명하다.
인간과 엮이지 않은 야생의 생명체는 스스로를 일정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탑재하고 태어난것 같은데 원래 인간도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흠모하는 구석기 시대인들은 사냥한 먹이나 과일을 무게를 재서 먹거나 포식한 날 잉여 칼로리를 불태우려고 일부러 뛰어다닌거 같지 않다. 그날 구한 음식만큼 먹고, 배부르면 자고 체형에 관심없이 막 살아도 체중이 일정하게 유지되던 당당한 시절이 있었다.
비만이 우성인 세상
과거에도 비만한 인간은 존재 했지만 이들은 꿀벌들의 여왕벌처럼 사회 특정계층(왕, 귀족) 중 소수에 불과했다. 보통의 인간에게 먹거리란 애써서 구해야 하는 것이었고 하루종일 몸을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로 식량생산이 증대되었고 가공을 통해 탄생한 높은 열량의 식품(정제곡물, 정제기름, 설탕)들이 싼값에 넘쳐나게 되었다. 현대인은 더이상 분주히 움직이지 않아도 손가락 까딱으로 하루 필요량을 초과하는 열량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6백만년 동안 균형을 유지되던 인간의 체형이 100년도 안되는 시간만에 엄청난 칼로리 압박과 부동의(?) 생활패턴에 밀려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미국 인구 센서스조사에서 2006년 이미 과체중(BMI 25~30)과 비만(BMI ≥30, 34%)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68%를 넘어섰다.
20-74세 미국인중 과체중, 비만, 고도비만(BMI≥40)의 비중
이제는 과체중 혹은 비만 인간의 수가 적정체중과 저체중 인간을 합한 수 보다 많아져 이들이 (오미크론 같은) 우세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가진 현대 인간은 없이 살던 과거 마른 인간시절을 그리워한다. 특별한 관리없이 먹고 살아도 체형을 유지하던 자유로운 조상들과 비교하면 원하는데로 먹다가는 체중이 계속 불어나 365일 관리해야 하는 현대인은 다이어트 노예나 다름없다.
사라진 매뉴얼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는 인도의 정신적 멘토 새드구루(Sadhguru)는 인간은 자기 몸에 대한 매뉴얼도 숙지하지 않고 쓰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바 있다. 모든 전자 제품에는 매뉴얼이 있고 그 속에 적힌 표준사용법 대로 사용해야 고장없이 오래 쓸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의 그 어떤 전자제품보다 정교하고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우리 몸이 표준사용방법이 없을리 있겠나. 어느순간 사라진 인간의 관리 매뉴얼에는 과거인간은 되고 현대인간은 못하는 자기조절의 비밀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사라진 매뉴얼을 찾으려는 시도(*이 글과 상관없는 책이다.)
인간이 지구에 처음 등장한 6백만년전에서 지금까지를 하루라고 친다면 자기관리 방법을 잃어버린건 1초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이다. 일탈한 시간이 정말 짧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의 기억을 토대로 매뉴얼을 복구해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 말이다.
체중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고급기능
내 몸 사용 매뉴얼을 복원한다면 신체를 늘 일정하게 유지하는 항상성(homeostasis)이 아마도 1장이 될 것이다. 신체나 정신건강을 유지하는데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몸의 항상성은 외부 환경, 먹거리등 매일 변하는 외부상황에 대응해 에너지 대사, 체액의 상태, 산성도, 체온 등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체중이나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사율을 조절하는 것을 대사의 유동성(metabolic flexibility)이라고도 한다.
현대인이 체중항상성을 잃게된 사이클은 단순하다. 성장기를 지난 성인이 먹고싶은 요즘 음식을 맘껏 먹으면 체중이 느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때론 맘껏먹지도 않았는데도 체중이 자꾸 증가하는 억울한 일을 겪는다. 뭐가 잘못된지 모르고 운동만으로 만회하려다 식욕이 솟구치는 역풍을 맞기도 한다. 어쩔수 없이 먹는 양 그리고 운동량을 일일이 계산해서 맞춰주는 일종의 수동 모드의 자기관리를 해야한다. 그에 반해 아무 생각없이 먹고 살아도 일정한 체중을 유지한 과거인간은 자동 모드를 썼던것 같다.
다시 자동 모드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비행기도 오토파일럿 모드가 있고 전기자동차에도 자율주행기능이 있다. 하지만 비행기나 전기자동차를 계기판도 모르고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이런 자율주행기능을 쓸 수는 없다. 기본적인 기계원리를 알고 관리하는자가 고급기술 쓸 수 있듯이 우리몸의 항상성 옵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사용자가 숙지하고 있어야할 두가지 사항이 있다. 그것은 신체가 잘 작동하도록 좋은 연료를 넣는 것과 허기라는 불안(Hangry)을 이겨내는 것이다.
포만감을 감추는 가공식품을 멀리하라
자연식(whole food)이 뭐냐고 질문에 가장 짧은 답은 "자연에서 난 그대로를 먹는다"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사람 손이 덜탄 음식, 공장에서 나오지 않은 음식이다.
식당에 비유하면 오픈 키친이다. 식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음식이 되는지 쉽게 보이면 자연식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야채는 씨를 뿌리고 거둬들이고 식탁에 오를때까지가 명확하다. 반면 라면은 밀가루부터 어느나라 밀을 어떻게 분쇄했는지 면반죽에 뭐가 들어가고 어떤기름에 튀겨 얼마나 지났는지 뒷면 영양성분표로만 설명되지 않는 미스테리한 공정이 수두룩하다.
여러 가공을 거친 식품은 수분, 식이섬유 그리고 무기질, 비타민 같은 미세영양분은 빠져나가고 순수 열량만 남는다. 그 덕에 몸에서 순식간에 소화되고 흡수되는것은 물론이고 먹는 것이 주는 쾌락도 강력하다. 몸은 칼로리를 계산하는 능력이 없어 칼로리가 높다고 배불러하지 않는다. 포만감의 핵심은 위장관이 물리적으로 꽉차서 늘어나는 장력인데 가공식은 부피도 적고 금방 소화되어 포만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
게다가 순도 높은 달고 기름진 맛과 향미 증진 첨가물은 쾌락에 관여하는 도파민 분비를 자극한다. 좀더 강한 자극을 위해 더 먹고픈 식탐이 생기는데 자연적인 브레이크 포만감 없이 먹는양을 조절하려면 엄청난 의지력이 필요해 진다.
신체가 충분한 식사 후 포만감을 느껴 음식앞에서 NO라고 하도록 만드려면 인위적인 공정을 거치지 않은 자연식 위주의 식사가 큰 도움이 된다. 첫시작은 하루 한끼를 채소 과일 익힌 곡물위주로 배가 부를때 까지 먹어 보는것이 좋다. 포만감을 알아 나가는게 이것 안먹고 저것 안먹는 자기절제 보다 몸의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다.
요즘 '음식앞에서 자율성을 회복'하는 다이어트가 유행하고있다. (예- 스테파니버터모어의 올인, 보니로니의 푸드컬쳐리벨) 이들은 특정 다이어트식이를 추구하기보다는 몸이 말하는 신호에 집중하면서 폭식과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난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이들의 공통된 비결은 가공도 낮은 자연식을 식사의 중심에 두었다는 것이다. 신선한 자연식은 질 좋은 연로와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신체기능인 항상성을 회복하기 위해 좋은 연료를 투입하는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
매일 건강한 허기를 느껴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주하는 인사말이 "밥먹었냐"이다. 분쟁이 잦은 중동에서 인사가 샬롬(평화)인것처럼 인사말은 그 민족이 가장 바라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통에 기근을 경험한 우리민족에게 밥먹는 것이 최대 과제였을 것이고 여전히 한끼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어르신이 있다. (심지어 나도 그랬다. )
Angus Barbieri의 금식 전과 후
그런데 기네스에는 앵거스 바비에리가 382일 동안 물과 차, 그리고 미네랄 만으로 단식한 기록이 있다. 단식 시작시 207킬로였던 몸무게가 단식끝날 무렵 82kg가 되어 있었다. 무려 일년이나 굶었는데 큰일나지 않았다는 사례다. 우리에겐 1k당 7700kcal 의 에너지를 내는 든든한 체지방이 있다. 누구나 비상식량으로 쓸 지방 10kg 쯤은 끼고 살지 않나 :)). 앵거스처럼 굶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한끼 굶어서는 몸에 스크레치도 안난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건강한 허기라고 말할수 있는 이유는 칼로리를 제한하는 절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 중 6~8시간 동안 충분하게 먹고 다음날 섭취를 하기 전까지 나머지 16~18시간 동안만 소화기관을 쉬는 것도 건강한 허기를 느끼는 방법이다. (간헐적 단식)
16시간이상 단식은 불필요한 인슐린 분비를 없애 몸이 저장모드에서 소비모드로 전환하도록 한다. 먹은 음식량이 적어도 하루 종일 지속해서 먹으면 음식속의 당분과 단백질로 인슐린이 분비되어 몸은 계속 저장모드에 스위치가 켜진다. 정말 물만 먹어도 살찌는 상황이 된다.
더이상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지 않으며 식량부족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이 바뀐지 잘 모르는 몸에게 저장모드와 소비모드를 적절히 바꿔주는 신호를 보내 것이 체중 조절의 자율성을 되찾는 방법이다.
단 주의할 점은 건강한 허기와 가짜 허기를 잘 구분하는 것이다. 낮동안 충분히 먹고도 난 밤 9시에 미친듯이 배가 고팠는데 그냥 포기하고 잠을 자면 신기하게 다음날 허기가 사라진 것을 종종 느꼈다. 금식시간만 보면 분명 다음날 아침이 전날 저녁보다 더 배고파야 한다. 식사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의 '미친'배고픔은 사실 '당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먹을걸로 달래지 못해 생긴 불안과 분노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진짜 배고픔과 가짜 배고픔을 가려내는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 간식을 먹지 않으면 죽을거 같은 느낌(실제로 심장이 두근거리며 죽을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과 두려움이 몸의 허기가 아닌 마음의 허기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화제를 돌리려 노력(산책, 가족 친구와 대화, 취미생활)하면 이겨낼 수 있다.
긴장된 순간을 잘 넘기고 다음날 다시 맛있고 충분하게 먹는 좋은 경험을 쌓아나가면 점차 가짜 배고픔이 다음끼니에 대한 기분좋은 기다림으로 변한다.
덧, 가공식품에 대한 그리움
이런 꼬장꼬장한 글을 쓰는 나는 그럼 얼마나 완벽하게 자연식을 하고 있을까.
2016년 부터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져 완전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호기심과 재미로 여러가지 먹거리를 시도해 보고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것이 과거 인간들의 먹거리를 흉내내는 것이다.
구석기다이어트의 핵심은 스테이크가 아니라 최소가공 자연식이라고 보는데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직접 사냥하거나 수렵채취하지 않아도 마트에서 구매한 미 가공 야채, 과일, 곡물로 쉽게 팔레오식단을 흉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효과는 분명했다. 식탐이 많은 내가 운동을 과하게 하지 않는데 먹고싶은 만큼 먹고 적정범위내의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자연식 덕분이다.
하지만 한평생 과자와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내가 그 맛을 그리워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좀 더 정확히는 가공식품을 모르고 살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심도 든다. 차라리 담배, 술, 마약이라면 없이 살수 있을것 같은데 가공식품은 참 교묘하게 식탁위로 다시 올라왔다. 여러번의 실패끝에 나온 중재안은 이 악마의 가공식품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 안에 두고 즐기는 것이다.
요즘 치트데이에는 원물과자에 집중
100% 자연식 혹은 생채식(Raw vegan)이 내 몸에 훨씬 도움이 될거 라는것 그리고 훨신 있어 보일거라는 것을 알지만... 현대인은 우리나라에서는 100% 자연식은 불가능하다는 변명을 하며 이번주 토요일에도 나는 치트데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