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3시간의 끝: 내가 '집 근처'에 집착한 이유

프롤로그

by 채돌이아빠

11년. 내가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다.


경기 남부 평택까지의 통근버스 부터 여의도의 숨 막히는 1호선 + 5호선 지옥철까지, 나의 커리어의 고정값 중 하나가 바로 '왕복 3-4시간의 출퇴근'이였다.



1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의 6분의 1을 길 위에 쏟아부으며 살았던 일상은 내 삶의 톱니바퀴를 하나둘씩 무너뜨렸다.

무너진 건강: 만성 위염과 원인 모를 몸살은 내 몸이 보내는 경고장이었다.

지워진 아빠의 자리: 퇴근 후 잠든 아이의 볼만 만지다 잠드는 일상. 나는 아빠인가, 아니면 고성능 ATM기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독박 육아의 무게: 나의 부재는 고스란히 와이프의 짐이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피로를 비난하며 갈등의 골을 깊게 팠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내 삶의 'Work & Life 밸런스' 는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여의도 근무 시절, 회사 근처 마포에 사는 동료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야근을 해도 30분이면 집에 도착해 아이와 저녁을 먹고, 남은 시간엔 운동을 한다는 동료들의 일상은 나에게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복지'처럼 보였다. 그들은 나보다 매일 3시간을 더 '인간답게' 살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지옥철에 맡길 때마다 나는 결심했다. "이 바위를 계속 밀어 올리려면, 바위의 무게가 아니라 바위를 미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내가 이직의 기회를 잡았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연봉도 명함의 무게도 아니었다. 바로 위치였다. 집까지 차로 15분, 현관문을 열고 아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거리.


그것은 나에게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내 삶의 주권을 되찾는 '전략적 후퇴이자 진격' 이었다.


동료들과 인사팀, 심지어 면접관들조차 물었다. "왜 그 쾌적한 여의도를 포기하고 현장 사업장으로 지원했느냐"고. 여의나루역에 내려 마주하는 우뚝 솟은 빌딩숲, 바로 옆 한강과 화려한 백화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을 그 풍경들이, 40대 가장이 된 나에겐 가족을 위한 '실리'보다 무겁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이직을 감행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근데... 그때는 진짜 몰랐다. 15분 만에 퇴근해서 너무 좋았는데, 그 뒤에 상상도 못한 더 힘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화려한 수식어보다 담백한 진심을,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마음을 기록합니다. 오늘도 어제보다 한 뼘 더 단단해지는 삶을 꿈꿉니다.

월, 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