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여행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기다림'이었다. 기차역, 지하철역, 미술관, 마지막 날 공항에서도 언제나 긴 대기 줄에 서 있었다. 줄은 줄어들지 않고, 현지인들은 바쁘게 지나간다. 대부분의 매표소 창구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아주 좋은 상황이다. 창구의 대부분이 비워있는 경우도 있다. 여행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이다. 아니 배려가 없다. 그들의 일상은 바쁘고, 세련된 파리지앵들은 여행자들에게 당신들이 좋아서 왔으니 당신들의 문제는 당신들이 해결하라고 말하고 있다. 길을 잃어도, 길을 물어도, 길에서 헤매고 있어도 친절하게 다가와 도와주는 파리지앵이 기억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기대된다. 프랑스는 나쁘다.
기다림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파리의 지하철역 입구에 어김없이 보이는 노숙자들과 그들 곁의 '개'였다. 루브르 역에도, 오르세 역, 드골 역, 샹젤리제 클레망소 역에도 젊은이가 혹은 노인이 커다란 개를 보란 듯이 내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마음이 아프고, 빈 그릇에 동전을 넣으며 그 돈으로 꼭 사료를 사주기를 기도하기도 하고, 혹시 사료를 사지 않고 개를 굶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내가 사료를 사다 주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졌다.
에트르타와 옹플뢰르, 몽생미셸 하루 투어를 신청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6시 20분 트로카데로(Trocadero) 역으로 갔다. 새벽, 지하철역, 밤새 내리는 비에 젖은 우산을 가진 사람들이 지나가고, 3번 출구를 찾아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계단 중간, 젊은 청년이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청년은 맨바닥에 앉아 있고 청년 옆, 제법 폭신한 방석 위에 래브라도로 보이는 큰 개가 쿨쿨 자고 있었다. 청년은 눈을 감고 추운 듯 웅크리고 있었고 계단 끝에서 우산을 털고 내려오는 사람도, 계단을 급하게 오르는 사람도 청년과 개가 보이지 않은 듯 지나갔다. 나는 청년 앞에서 빈 동전 그릇을 찾았으나 빈 그릇 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를 피해서 들어왔을까. 지갑에서 오늘 저녁식사 값을 꺼내 청년 가방과 폭신한 래브라도의 방석 사이에 두고 서둘러 올라왔다.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파리에서 서쪽 루앙, 에트르타, 몽생미셸을 지나 중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부와즈 (Amboise)를 거쳐 남부 아를, 액상프로방스, 니스로 그리고 니스에서 밀레의 바르비종(Barvizon)을 거쳐 파리로 돌아오는 야심차고 완벽한 계획을 세웠으나 우리의 일정에도 맞지 않았고 혼자서 운전하기도 무리였다. 어쨌든 기차로 니스를 갔고 니스에서 차를 빌려 원하는 남부 여행을 하고 왔지만 모네의 에트르타에 가고 싶었다. 남은 시간은 이틀뿐이고 나는 우리나라 여행사 하루 투어를 선택했다. 새벽 6시 30분부터 버스는 열심히 달렸고 에트르타와 옹플뢰르 그리고 몽생미셸의 저녁 일몰까지 감상하고 다음날 새벽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인상파 화가들에게 사랑받고 특히 모네가 사랑한 해변의 작은 마을, 에트르타(Etretat)에 도착해 예쁜 가이드 샘의 깃발을 따라 해변으로 걸었다. 모네의 그림에서 보았던 바다와 코끼리 모습의 절벽이 펼쳐졌다. 가이드 샘은 밤새 내린 비가 새벽에 그치고 날씨가 맑아지면서 오늘 최고의 몽생미셸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해변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 아몽 절벽 (falaise d'amount)에 천천히 올랐다. 조그만 샤펠 성당을 지나 절벽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렸다.
(Etretat)
옹플뢰르(Honfleur)로 향해 다시 버스를 타고 가이드 샘이 제공한 햄 치즈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었다. 바게트 샌드위치는 언제나 맛있다. 버스에서도 차창으로 예쁜 시골집과 남부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라벤다가 가득한 보라색 밭을 지난다. 딸과 함께 왔다면.
딸은 오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MK2 bibliotheque, 그리고 studio 28 영화관에 간다.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을 본다고 했다. 딸을 혼자 파리에 남기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했으나 이번 여행 중 하루는 딸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쨌든 나는 버스에서 혼자였다. 나쁘지 않았다.
바닷가 중세마을 옹플뢰르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생트 카트린 성당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의 성당은 천장과 의자 장식품 등이 모두 나무로 꾸며져 있다. 옹플뢰르에서 우리 버스 사람들은 제각기 맛있는 바닷가 식당과 카페를 찾고 있었지만 나는 오래된 성당의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Eglise catholique Sainte Catherine a Honfleur)
버스가 해안길을 달리고 멀리 사진으로 보았던 몽생미셸 (Mont Saint-Michel)이 보였다. 몽생미셸 입구의 줄지은 호텔 주차장에 버스가 우리를 내려주고 우리는 다시 작은 전용버스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좁은 아치형 문을 따라 천년의 역사를 가진 성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착한 학생들처럼 가이드 샘의 깃발을 따라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성을 둘러보았다. 6월 중순, 일몰시간은 저녁 10시쯤이다. 일단 돌아가 저녁을 먹고 다시 성으로 와서 일몰을 함께 보기로 했다. 호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람들은 제각각 모여 저녁을 먹는데 낯을 가리는 나는 주저했다. 딸과 여행 왔다는 내 또래의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함께 먹자고 했다. 홍합을 주문했다. 노르망디의 홍합은 유명하다. 그러나 사이좋은 모녀의 저녁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서두른 탓인지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가이드 샘이 우리 팀을 불러 모았고 커피를 주문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밖으로 나왔다. 음식점에서 다시 섬까지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