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 딸은 내게 파리에 가면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오늘이다. 니스에서 딸이 특별한 선물에 대해 말문을 열었고. 그 선물은 파리로 돌아온 다음날,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점심식사였다. 딸은 인터넷으로만 예약 가능한 특별히 착한 가격의 식사이니 그냥 맛있게 드시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평소 딸의 알뜰한 씀씀이를 떠올리며 마음으로 받겠으니 취소하라고 했다. 딸은 취소하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6개월간 힘든 영화제 일을 할 때 받은 도움의 보답이라고 했다. 앞으로 몇 년간 생신선물로 대신하겠다 해서 나는 승낙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엄마를 챙기는 딸이 대견한 마음도 물론이었지만 그래도 한 끼의 식사로 딸의 아까운 돈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가을 생일선물을 미리 받기 전에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샤갈 뮤지엄에서의 강렬한 기억이 잊히지 않아 오페라 가르니에 (Opera Garnier)로 향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모티브가 된 오페라 가르니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웅장하고 빛났다. 화려한 도시, 파리의 가장 화려한 극장이다.
가르니에의 연회장에 들어서니 베르사유보다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극장 안으로 샤갈의 '꿈의 꽃다발'이 보인다. 스트라빈스키, 차이코프스키, 드뷔시, 모차르트, 바그너 등의 발레와 오페라 장면을 담아 그린 그림이다. 고개를 젖히고 천장화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마음이 행복하면 샤갈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샤갈은 화가로서 성공했고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말년에 러시아로 돌아가 작품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성공해서 행복했을까? 아니면 그는 행복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그림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반짝이는 금박으로 가득한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은 샤갈의 꽃다발이었다..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 샤갈의 '꿈의 꽃다발' )
오페라 가르니에의 감동을 가슴에 담고 걸었다. 퐁네프다리를 건너 센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조폐청 건물로 들어갔다. 영화에서 나올 듯한 멋진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 위에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다. 레드카펫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입구에서 안내를 받고 초록색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은 3개, 금팔찌가 번쩍이는 젊은 중국 남자와 예쁜 여자가 창가 테이블에, 머리 하얀 미국인 부부가 다른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방 안쪽 테이블에 안내되었고 테이블 위에는 시그니처 접시가 놓여있었다.
'I will be back'을 외치며 다시 돌아오는 멋진 웨이터의 손에서 화려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샴페인, 식전 빵을 시작으로
아뮤즈 부쉬: 콩과 레드비트, 배추. 그리고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나온 생선알
애피타이저 : 브리오슈와 함께 나온 아티초크 블랙 트러플 수프(Artichoke soup with black truffle; layered truffled mushroom brioche)
메인 요리 :가르 파쵸 샐러드, 와규 스테이크, 양고기 스테이크
디저트: 바닐라 밀푀유, 초콜릿, 블랙티 소르베, 지배인이 디저트 트롤리를 끌고 와서 주고 간 레몬 아이스크림, 초콜릿 푸딩, 그리고 가장 맛있었던 딸기가 올라온 과자.
드라이아이스를 채운 식전요리부터 바닐라 크림이 채워진 밀푀유, 끝도 없이 나오는 디저트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디저트 셔벗 위에 올려진 민트, 와인과 초콜릿. 완벽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이다. 나에게 오늘 최고 요리는 트러플 수프였다. 꽃봉오리 아티초크의 맛보다는 트러플 버섯의 향이 가득했다.
딸은, 우리 가족 유전자와는 다르게 특별한 알뜰함을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책상서랍에는 현금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지구환경을 위해 한겨울에도 오리털이나 거위털 잠바도 입지 않고, 화장품도 사지 않는다. 옷은 10년 된 나의 옷을 입고 쓰레기 만드는 것을 가장 혐오하는 딸이 한 끼의 식사에 돈을 쓴다는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메인 요리를 선택할 때 단지 추가 요금을 내지 않는 이유로 가격이 가장 착한 양고기를 주문했다. 양고기는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먹었고 좋은 기억이 없었지만 오늘의 양고기 요리는 일단 데코레이션으로 눈을 사로잡았고 나는 양고기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게는 양고기보다 아스파라거스와 소스만으로도충분했다.
식사 중간에 머리 하얀 요리사 할아버지가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나누었다. 인상 좋은 주인 할아버지는 시끄러운 중국 남자와 웃으며 이야기했고 옆 테이블의 미국인들과는 친구 사이인 듯했다. 그리고 딸과 나에게도 다가와 상냥한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파리의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딸과 나는 남은 시간 둘러볼 미술관의 순위를 매겼고 내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을 선택했다. 마르모탕 가문이 수집한 미술품을 보관하던 저택을 나라에 기증해 탄생한 미술관이고 작은 저택이지만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특히 인상파의 시작인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를 볼 수 있고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의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Paris Street, Rainy Day)'를 볼 수 있다. 두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달려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좁은 입구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날씨는 덥고 대기하는 줄은 줄어들지 않고. 30분 넘게 기다리다 티켓 창구를 들여다보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계시는데 신용카드 리더기가 고장 난 듯, 현금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입장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좁은 계단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고 드디어 폭발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30분을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1층에는 개인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고 거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과 르느와르, 세잔, 마티스 등 인상파의 그림이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본격적인 모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수련과 영국 국회의사당 일출, 루앙 성당 그림을 보고 그런데 내가 보고 싶었던 '해돋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작품은 대여중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비 오는 파리의 거리'를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물에 젖은 거리와 회색 하늘, 우산을 쓰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19세기 도시의 일상이 보인다.
무심히 고개를 돌린 남자와 남자의 팔을 잡고 걷는 여자.
오늘의 일상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다음 세기, 또 다음 세기의 사람들이 액자 속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