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니스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아침 일찍 파리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하루가 더 애틋하고 소중했다.
니스의 아침은 특별하다. 아침에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골목은 조용하고 도시는 늦잠을 자는 듯하다. 구수한 빵 냄새를 따라가면 작은 카페 안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아침을먹는다. 갓 구워 나온 바게트와 크루아상, 파이, 샌드위치가 손짓을 한다. 마티스 미술관을 가기 위해 숙소에서 나와 트램으로 걸어가던 중 유리창 너머 진열대에서 특별한 빵을 보았다. 양파빵이다. 딸과 나는 작은 빵집의 문을 열었다.
(11 Rue Pertinax 근처 빵집이다. 아쉽게도 가게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플랫 브레드 위에 양파가 가득하다. 올리브가 하나 덤으로! 특별한 치즈도 없이 양파일 뿐인데 이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양파를 볶아서 올린 듯했다. 아니면 플랫 브레드에 비법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딸과 나는 이 빵을 '양파빵'으로 이름 지었고 다음날 아침, 파리로 돌아가기 전, 다시 가게로 뛰어와 '양파빵'을 챙겼다. 6시간 기차여행 중 소중한 식량이었다.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와 이 맛을 잊지 못해 우리나라 빵집에서 찾아보았지만 양파를 마요네즈에 버무려 치즈를 얹은 빵이나 토마토소스와 함께 구운 빵을 보았을 뿐이다.
트램을 타고 Arenes/Musee Matisse에서 내려 공원을 걷다 보니 올리브 나무 사이로 선홍빛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마티스 뮤지엄이다. 지하 매표소 '꽃과 과일'과 브론즈 작품을 지나 계단을 올라오니 그의 드로잉 작품과 편지, 회화작품이 전시되어있다. 그중에서 '마티스 부인의 초상 Portrait de Madame Matisse'이 나를 사로잡았다. 주황과 초록색의 '마티스 부인의 초상'은 알고 있었지만 이 그림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티스 뮤지엄 Musee Matisse)
마티스 부인의 초상 변월룡 (붉은 한복을 입은 여인)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누구일까. 학고재에서 보았던 변월룡의 작품 속 여인, 붉은 한복을 입은 여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티스의 색 때문일 수도 있다. 표정 때문일까. 물론 두 그림은 다르다. 그러나 나는 '마티스 부인의 초상'에서 동양적 선과 색을 보았다. 평론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저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을 따라다니는 나의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다.
마티스 뮤지엄에서 15번 버스를 타고 샤갈 미술관(MUSEE DE CHAGALL)에서 내렸다. 골목을 따라 5분 정도 내려오니 입구가 보이고 티켓을 사서 정원으로 들어가니 보라색 라벤다가 우리를 반긴다. 니스의 마지막 날, 정원 카페에 앉아 드디어 라벤다를 마주 보며 빵과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안쪽 전시실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 전시실에 샤갈의 성서 연작 시리즈가 전시되어있다. '노아의 방주', '바위를 치는 모세와 십계명을 받는 모세', '야곱의 꿈'을 지나 '이삭의 희생',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는 낙원', 인간의 창조' 그림을 지나니 온통 붉은 계열의 그림들이 5점 전시되어 있다. 그림 속에서 생 폴 드 방스 마을이 보인다. 파랑과 빨강의 색채에 홀린 듯 건물 끝, 작은 콘서트 홀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화면에 샤갈에 관한 영상이 나오고 화면 옆, 샤갈이 직접 제작한 파란색 가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홀 중앙의 화면 밑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피아노 역시 샤갈의 그림이다.
(딸의 사진 중에서 콘서트 홀)
(딸의 사진 중에서 콘서트홀 피아노)
콘서트 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샤갈의 파란 세상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마세나 광장으로 돌아왔다. 광장을 돌아 골목길에서 우연히 바게트 빵을 가슴 가득 안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보았다. 식당은 작았지만 알뜰해 보였다. 딸과 나는 니스의 마지막 한 끼를 선택했다.
'Le Petit Palais'
나의 예감은 적중했고 니스 최고의 식사였다. 딸이 주문한 부드러운 연어도맛있었지만 나의 문어 역시 좋았다.
나는 문어를 좋아한다. 스테이크를 먹지 않는다면 생선도 먹지 말아야 하지만 미안하게도 문어를 포기할 수 없다. 사실 생 문어를 보고 음식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몇 년 전, 고된 산티아고 길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고 힘들게 길을 걷다가 레온이라는 도시에 들어섰다. 순례길 동반자,Y 언니와 처음 문어요리 ( pulpo)를 먹었다. 올리브 오일, 감자, 고추, 문어의 단순한 음식이지만 뽈뽀를 먹고 언니와 나는 힘을 내어 다시 길에 설 수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집으로 돌아와 생 문어를 끓는 물에 넣으며 미안했지만 나는 가끔 그 미안한 일을 했다.
니스의 문어요리는 화려했다. 루콜라와 야채가 향을 돋우고, 붉은색 초록색 생 올리브가 신의 한 수였다.
(에필로그 )
마세나 광장의 등이 켜지고 니스 해변에 달이 떴다. 달빛이 바다 위로 반짝인다.
마지막 순간은 온다. 다시 올 수 있을까. 딸과 함께 해변에 앉아 달을 바라보았다. 다시 올 수 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