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여름이 시작되는 첫날, 6월 21일, 음악과 사랑에 빠진다. 'Fete de la Musique'(음악축제)'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세계의 모든 음악이 초대되는 음악의 경계 없는 음악축제이다.
물론, 나는 이 유명한 음악축제에 대해서 몰랐다. 나에게 6월 21일은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날이고 다음날 정오에 공항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거리 곳곳에 'Fete de la Musique'에 대한 광고가 보였다. 처음에는 작은 음악축제이려니 했는데 올해로 38년째 열리는 프랑스 음악축제였다. 어제는 거리 곳곳에 음악을 연주할 작은 무대가 설치되었다. 축제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딸과 나는 오늘의 축제를 살펴보았다. 몽마르트르(일렉트로닉 음악과 일렉트로닉 댄스파티), 성 외스타슈 성당 (36시간 밤샘 공연),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 앞에서 현악 4중주), 부르스 광장(19명의 DJ와 함께 클럽파티), 들라크루아 미술관 (아프리카 음악공연), 이탈리아 문화원 (클래식 공연), 쁘띠 팔레 ( 젊은 클래식 아티스트의 공연), 생 마르탱 운하 (일렉 음악파티), 베르시 빌리지(포크, 팝, 펑크 공연), 르 펙슈아 루프탑 (DJ와 클럽파티)등 수많은 공연 중에서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야경과 클래식 공연)을 선택했다.
라벤다 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음악축제로 대신했다. 하늘이 주신 기회인 듯. 그런데 공연을 보려면 줄을 서야 한다. 음악축제의 모든 공연은 무료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 공연은 밤 10시 30분에 시작하지만 저녁 6시부터는 줄을 서야 한다고.
오후에는 루브르에서 줄을 서야 하니 오전에 마지막으로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파리에 온 첫날, 오후에 도착해 바토뮤스를 타고 둘째 날 오르세 미술관과 로댕미술관에 갔었다. 그런데 로댕 미술관에서 조각 작품을 보고 있는데 뭔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밀레의 그림을 보지 않았다. 꼭 보아야 할 밀레의 그림을 보지 못해서 허탈했다. 오늘은 둘째 날 보지 못했던 밀레의 그림을 보기 위해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나와 아침 바람을 느끼며 걸었다. 딸과 나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쥬키니 파스타를 먹었던 'Cuppa-salon de Cafe'로 갔다.
'Cuppa - Salon de Cafe'
오르세 미술관은 여느 때처럼 사람들로 가득했다.
G층에서 시작한다. 앵그르의 샘, 로트렉의 침대,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올랭피아,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등 그림을 보고 5층으로 올라가 모네와 르느와르 세잔, 마네, 쇠라, 드가 등의 그림을 본다. 그리고 2층으로 내려와 고흐와 고갱의 전시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G층 4번 전시실에서 드디어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양치는 소녀와 양 떼'와 마주했다.
밀레 Jean-Francois Millet '만종 L'Angelus'
17년 전, 뉴욕의 작은 미술관 'THE Frick Collection'에서 밀레의 그림이 나의 마음에 다가왔다. 터너의 대작 옆, 구석진 자리에 밀레의 작은 그림 '등불 아래 바느질하는 여인'이 있었다. 당시 3년 기한으로 뉴욕에 살게 되어 이사를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마음도 몸도 힘든 상황이었다. 밀레의 그림 속 잠든 아기와 바느질하는 여인, 여인과 아기를 비추는 불빛이 따뜻했다. 나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리고 가끔 힘들 때면 그 그림을 찾아갔었다. 3년의 시간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 다시 그림을 찾아갔다. 밀레의 그림 앞에서, 그 따뜻한 불빛 앞에서 인사했다. 이제 돌아간다고. 언젠가 다시 오겠다. 그동안 고마웠다. 작별인사를 했다.
밀레 '등불아래 바느질하는 여인 Woman Sewing by Lamplight' / 엽서 사진
누군가 내게 왜 그림을 보는지 묻는다면, 파리에서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루브르에서 12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밀레의 그림을 떠올리고 대답할 것이다. 그림에는 화가의 삶이 있다. 고단한 삶이든, 행복한 순간이든. 그리고 그 그림을 마주하는 나의 삶이 있다. 때로는 위로받고 그림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그리고 희망을 본다.
오르세에서 나와 루브르 근처 베트남 음식점에서 따뜻한 국물의 쌀국수를 먹고 루브르 앞 긴 줄에 섰다. 3시간, 길고 긴 줄이 줄어들고 루브르 입구 피라미드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간 사람들은 바닥에 차례차례 앉았다. 무대 위에 파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올랐다. 젊은 지휘자가 인사를 한다. 첫 곡은 베를리오즈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 파란 유리 피라미드 아래 부드러운 선율이 루브르를 가득 채운다. 바닥에 앉은 사람들은 행복한 시선으로 무대를 보고 있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박수가 울리고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 올랐다. 두 번째 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OP 77'이 시작되었다. 1악장 알레그로, 매력적인 오보에의 2악장, 3악장 바이올린의 화려한 8분 독주가 끝나며 사람들이 일어섰다. 박수가 울려 나왔다. 지휘자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아름다운 바이올린 연주자도, 관객들과 함께 웃었다.
연주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도로는 세계 음악의 전시장이다. 폭죽이 울리고 드럼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춤을 춘다. 노래를 부르고 서로 부둥켜안고.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듯.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도로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6월 22일 토요일 아침, 공항으로 떠나기 전 센강을 걸었다.
파리는 어제의 축제를 끝내고 깊이 잠들어버렸다. 상상할 수 없는 공허하고 적막한 파리 시내를 돌아 퐁네프 다리를 향해 걸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퐁네프 다리는 오늘 아침, 사람도 차도 없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천천히 텅 빈 퐁네프 다리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