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도로를 달리고
핑크 호수를 지나 캥거루 섬으로

by 은동 누나

2017. 2 10 (금요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작은 버스를 타고 낙타 농장에 도착했다. 낙타들이 얌전히 줄지어 앉아있다. 딸과 나는 이름이 'Pete'인 귀여운 낙타에 올랐다. 우리를 태운 낙타가 일어나자 생각보다 키가 컸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낙타는 속눈썹이 길고 아주 귀여웠고 사뿐사뿐 내딛는 발바닥은 마카다미아 모양이었다. 딸과 나의 무게로 예쁜 낙타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낙타를 타고 일출을 보는 일이 마음 편하지 않았다. 낙타들이 줄지어 걷고 멀리 붉은 바위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일렬로 선 낙타 위에서 일출을 보았다. 농장으로 돌아와 빵과 베리 잼, 주스로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울룰루에서 이틀 머물면서 다음 여행지를 고민했다. 처음 계획은 다시 아웃백 웨이를 달려 퍼스로, 퍼스에서 해안길을 따라 올라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틀반에 걸쳐 고생하고 온 그 길을 다시 달리고 싶지 않았다. 로드하우스의 무섭고 수용소 같은 숙소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지도에 '캥거루 아일랜드'라는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웃백 길에서 야생 낙타, 소 , 양, 에무 등을 보았지만 야생 캥거루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캥거루 아일랜드'를 검색해보니 '호주의 갈라파고스 섬'이라고 불리며 야생식물과 동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섬이다. 척박한 토양과 연 강수량이 750mm도 안되어 원주민들도 거주를 포기하고 외면된 땅이었으며 오히려 버려진 땅의 축복으로 인간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던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울룰루에서 남쪽의 애들래이드를 지나 '케이프 저비스'의 캥거루 섬으로 향하는 SeaLink Ferry Terminal까지 1,683km 18시간, 서울 부산 왕복을 2번 해야 하는 거리이지만 일단 출발했다. 호주의 갈라파고스 섬으로!


울룰루 리조트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245km 2시간 30분을 달려 GHAN에 도착했다. 로드하우스에서 주유를 하고 이제 Stuart Hwy/ A 87 도로 남쪽으로 1,023km를 10시간 달려 다음날 새벽 2시 포트 오거스트의 Standpipe Golf Motor Inn에 들어갈 수 있었다.


A87 도로를 남쪽으로 달리던 중 이상한 지형이 보였다. 작은 모래 언덕이 끝없이 나타나며 세계 오팔의 95%를 생산하는 '쿠버페디 Coober Pedy'를 지났다. 모래 언덕 같은 흙 봉우리는 오팔 채굴 흔적이다. 붉은 사막에서 보석을 채굴하기 위해 퍼 올린 무덤이고 그 무덤은 다시 태양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쿠버페디 홍보 사진 중에서)


쿠버페디, 이곳의 여름 온도는 40도를 넘기는 무더위가 지속되며 주민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주로 동굴 등 지하에서 생활한다. 모래언덕을 지나면서 영화 '매드맥스'의 모래바람과 질주하는 녹슨 차가 떠올랐다. 'What a Day. What a Lovely Day!" 대사가 어울리는 더위와 모래사막이다. 질주하는 우리 차 안에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헤비메탈 사운드가 소리 높여 나오고 우리는 매드맥스와 퓨리오사처럼 달렸다.


(쿠버페디를 달리며. 왼쪽으로 채굴기계와 오른쪽에 채굴 흔적 봉우리들이 보인다.)

그러나 너무 멋지게 달려서일까! 쿠버페디를 지나면서 자동차 기름이 한 칸 남았다. 다음 로드하우스까지 겨우 달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5시를 넘기고 혹시나 하는 걱정에 남편은 길가 Rest Area에 차를 정차했다. 남편은 거대한 로드 트레인 운전사 아저씨에게 우리 상황을 설명하고 다음 로드하우스까지 가야 할지 물었다. 친절한 운전사 아저씨는 우리 차로 건너와서 주유 표시선을 보고 다음 로드하우스까지 갈 수 없고 아마도 닫혀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다시 쿠버페디로 돌아가서 주유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쿠버페디까지 돌아가는 길이 100km 정도 남았고 남은 한 칸의 기름으로 갈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친절한 아저씨는 우리에게 에어컨을 끄고 시속 80km 이하의 속도로 주행하며 본인이 우리 뒤를 따라가겠으니 혹시 기름이 떨어져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매드맥스 도로의 은인이었다.


다시 쿠버페디로 돌아가는 길. 기름을 아끼느라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고 40도가 넘는 도로의 열기와 모래바람을 온몸으로 안고 달려 다시 오팔 보석의 도시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 주유 등에 등이 켜졌고 우리는 마음을 졸이며 어둠에 반짝이는 도시로 들어갔다. 뒤에 우리를 따라오던 친절한 로드 트레인 아저씨가 우리를 지나갔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무사히 주유를 하고 쿠버페디에서 다시 남쪽으로 달려가는 길에 딸이 그토록 기대했던 캥거루가 나타났다. 어둠 속 도로에 캥거루와 새끼가 앉아있기도 하고 자동차 불빛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도로 옆에 죽은 캥거루의 모습이 무더기로 보였다. 남편은 자동차 속도를 줄이고 캥거루를 피해 조심히 운전했다. 캥거루는 야간의 불빛을 보면 뒤로 도망가지 못하고 길에서 로드킬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캥거루의 불쌍한 모습이 잠을 깨웠다. 딸과 나는 캥거루를 로드킬 하지 않도록 기도했다. 도로 맞은편에서 질주해오는 무시무시한 로드 트레인과 캥거루를 지키려는 힘겨운 길 위에서 눈을 감을 수도 눈을 뜰 수도 없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5시간을 달려 드디어 포트 오거스타(Port Augusta)로 들어갔다. 다행히 캥거루를 피해서 잘 도착했다.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왔다.


(쿠퍼페디에서 포트 어거스타로 달리는 Stuart Hwy/ A 87 도로의 일몰)

2017. 2. 11 (토요일)


포트 오거스타의 아침, 매드맥스 도로의 밤이 사라지고 도시의 아침이 밝았다. 캥거루 섬으로 떠나기 전, 우연히 들른 브런치 카페 'Archer's Table'에서 아침을 먹었다. 호주 여행 중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


(포트 어거스타 브런치 식당 'Archers' Table')


이제 거리의 신호등을 즐기며 캥거루 섬으로 안전한 도로를 달렸다. 캥거루 섬으로 떠나는 'SeaLink Ferry Terminal'까지 5시간, 어제의 무서운 길의 보상인 듯, 핑크 호수를 지났다.


핑크 호수를 지나고 애들레이드를 지나 다시 수많은 언덕과 숲을 지나서 항구에 도착했다. 배에서 45분, 먼 길의 끝, 캥거루 섬에 도착했다. 캥거루 섬의 첫 기억은 나무다. 틀어지고 휘어진 커다란 유칼립투스 나무가 가득한 도로를 따라 현실과 다른 세상으로 들어갔다.


에필로그


작년 2020년 1월.

호주 산불이 인간의 힘으로 꺼지지 않고 마침내 호주의 갈라파고스, 캥거루 섬까지 이어졌다.

불에 얼굴이 그슬린 아기 코알라가 땅에 코를 박고 물을 마시는 뉴스를 보았다.

마음이 무너졌다. 무지한 인간이 파괴한 환경의 벌을 대신 받고 있는 작은 생명에 눈물이 났다.

그러나 나 역시 그 불길에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딸은 환경단체에 적은 금액을 기부했고 조금이라도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려 한다.


다시 캥거루 섬에 가고 싶다.

전설의 나무와 붉은 바위, 캥거루, 코알라, 천국의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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