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지 불행인지,
캥거루 섬에는 캥거루가 많다

by 은동 누나

2017. 2. 12 (일요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캥거루 섬에는 캥거루가 많다. 야행성이라는 캥거루는 아침에도 점심에도 도로를 가로지르며 뛰어다니고 언덕에서 캥거루들이 권투시합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캥거루 섬에서 운전할 때는 속도를 줄이고 조심해야 한다. 야행성이라는 이 녀석들은 아침이면 도로 여기저기에 불쌍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로드킬 당해 누워있었다. 울룰루를 출발할 때, 야생 캥거루를 너무 보고 싶어 했던 딸은 이 섬의 살아있는 혹은 도로에 누워있는 캥거루의 모습에 눈을 감아버렸다.


캥거루 섬의 중심에 위치한 Ficifolia Lodge에서 이틀을 지냈다. 작은 방 2개와 부엌을 갖춘 안락한 숙소였고 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조용히 머물고 싶었다. 섬의 모양이 캥거루를 닮았고 캥거루가 많이 살고 있는 캥거루 섬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캥거루 섬의 첫 번째 탐험을 하기 위해 Seal Bay로 향했다. 호주 바다사자의 고향이며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서식지이다. Seal Bay는 자연보호구역의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전문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바다사자에게 접근해서도 안되고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바다사자들은 위협을 느끼면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모여 가이드를 따라서 바다로 걸었다. 친환경 탐방로 앞에 바다사자 한 마리가 편안히 누워 있었고 가이드와 우리는 바다사자가 이동할 때까지 기다렸다. 바다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탐방로 문을 떠나고 나서야 가이드는 탐방로 문을 열고 우리는 바다로 나아가 바다의 주인, 바다사자 일행을 볼 수 있었다.

20170212_130552.jpg (친환경 탐방로 앞에 바다사자가 쉬고 있다. 그가 이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수십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모래밭에서 뒹굴며 잠을 자기도 하고, 친구와 놀기도 하고, 아기 바다사자가 엄마의 젖을 먹고 있다. 바다의 주인인 그들은 낯선 관광객에게 관심도 없다. 평화로운 그들을 위해 가이드와 관광객들은 조심스럽게 예의를 지켰다.

(Seal Bay의 바다사자들)


바다사자와 인사를 나누고 캥거루 섬 서쪽 바닷가로 이동했다. 이 섬의 명물인 바닷가 언덕 위에 솟아 있는

'리마커블 록스 (Remarkable Rocks)', 붉은색의 기묘한 화강암 바위들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신의 작품이다.

20170212_153034.jpg (Remarkable Rock)

다시 섬의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캥거루 섬의 와이너리 음식점 'The Marron Cafe'에서 점심을 먹었다. 와이너리 농장의 한 편에 자리한 와인 시음장에서 와인을 맛보고 한국에서 우리가족의 막내, 강아지 '백호'를 돌봐주고 있는 나의 친구를 위해 와인을 구입했다. 카페에 들어가 빵과 커피, Seafood Platter를 주문했다. 가격이 착하지 않았지만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캥거루 섬의 3분의 1은 자연 초목과 야생 유칼립투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지에서는 멸종되었거나 흔하지 않은 많은 종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해안을 따라 달리며 푸른 바다와 붉은 바위 그리고 울창한 유칼립투스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었다.

(캥거루 섬의 유칼립투스 숲)


매일 저녁 5시 킹스코트 항구 (KIngs Cote Pier)에서 펠리컨 먹이주기 행사가 있다. 매일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영리한 펠리컨들이 할아버지의 물고기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킹스코트 항구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항구 근처 작은 식당에서 Fish and Chips와 오징어튀김을 포장했다. 숙소에서 먹으려고 했지만 너무 맛있는 냄새를 참지 못하고 차 안에서 반 이상을 먹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Fish and Chips 였다. 식당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길가의 생선을 파는 가게 안 작은 Take Out 가게였다.



숙소에 돌아오니 어둠이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울룰루의 더위와 열기는 사라졌다. 하늘을 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고요함과 적막이 오히려 편안했다.


에필로그


울룰루에서 다시 아웃백 길로 돌아가지 않고 캥거루 섬으로 내려온 것은 행복한 선택이었다. 호주의 갈라파고스 섬을 가득 채운 기묘한 유칼립투스 나무를 보면서 영화 '몬스터 콜'의 커다란 주목나무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며, 스스로를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 나무 괴물에게 주인공 소년은 자신의 상처를 내어주고 마침내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휘어진 나무, 붉은 바위, 캥거루와 붉은 앵무새, 서늘하고 촉촉한 바람까지, 이 섬의 평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섬에 발을 내딛는 평범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주는 착한 몬스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일 섬을 떠날 때는 나의 오래된 짐도 이곳에 두고 가고 싶었다. 이 섬은 받아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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