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쪽으로 경계를 넘다.
SA남호주에서 WA서호주로

by 은동 누나


2017. 2. 14 (화요일)


캥거루 섬에서 배를 타고 케이프 저비스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다시 애들레이드로 올라가는 길, 도로 옆 언덕에서 수십 마리의 캥거루가 보였다. 처음에는 다른 동물인가 했는데 앞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고 권투를 하는 모습의 캥거루들이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했다.


포트 어거스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울룰루에서 나왔을 때 환상의 아침을 먹었던 브런치카페 'Archers' Table'에 다시 들렀다. 먹고 또 먹고 플랫화이트를 마시고 오늘 하루 종일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의 귀중한 식량으로 샌드위치를 챙겼다. 잘 먹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일어나는데 동그란 아몬드 빵을 덤으로 포장해주었다.



포트 어거스타에서 퍼스까지 A1 고속도로를 2,385km 달려야 한다.

Ceduna를 지나고 Denial Bay라는 표시가 보여 바닷가에서 잠시 쉬었다. 인적 없는 한적한 해변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모래 해변과 푸른 바다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친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은 세상의 어느 보석보다 아름답다. 가슴 가득 보석을 담는다.

(Denial Bay)


반짝이는 바다를 떠나 다시 5시간을 달리자 어둠이 내렸다. 남호주와 서호주의 경계를 앞둔 Boarder Village Road House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웃백 , 로드하우스의 수용소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도 침대 두 개가 가득 찬 좁은 방에서 빨리 밤이 지나기를 바랬다.


2017. 2. 15 (수요일)


새벽이 오고 다시 하루를 온전히 달려야 퍼스에 도착한다. 로드하우스를 떠나고 5분, 로드하우스 바로 앞, 남호주와 서호주의 주 경계 검역소에 도착했다. 호주는 총 6개의 주로 되어 있는데 주 경계를 지날 때마다 가지고 있는 과일, 채소 등을 모두 버려야 한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도 공항을 나오기 전에 모두 버려야 한다. 다른 주에서 가져온 과일 등에 혹시 모를 파리(Fruit Fly)가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예방차원이라는 안내문을 읽었다. 로드하우스를 떠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과일을 버리고 떠났다.


검역소 직원이 나와 차를 세우고 문제가 될 과일이나 농산물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없다고 답했고 직원은 우리에게 모두 차에서 내리라고 불친절하게 명령하더니 차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트렁크를 열고 캐리어를 모두 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 안을 들여다보더니 뒷 좌석에 있던 꿀단지를 꺼내 들었다. 나는 한국에 가지고 갈 선물이라고 말했으나 직원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안된다고 선물용 꿀을 모두 압수했다. 캥거루 섬에서 구입한 생꿀은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 아쉽고 화가 났지만 방법이 없었다.

(주 경계 검역소에서 꿀단지를 뺏기는 순간)


여행을 하면서 경계를 넘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나에게 혹은 우리 가족에게 향하는 철저하고 의심스러운 눈총을 받아야 했던 기억이 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돌아올 때, 파리에서 미국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의 경계를 느껴야 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남다르다는 느낌을 확인하는 순간은 힘들다. 벌판의 호주에서도 그랬다.


불쾌하고 무엇보다 달콤한 꿀단지가 눈에 어른거려 화가 났지만 주경계를 통과하고 서호주에 진입하면서 호주에서 가장 긴 직선도로라는 이름을 가진 '90 Mile Straight'가 시작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는 호주 대륙의 상징이다.


(퍼스로 향하는 호주에서 가장 긴 직선도로 / 석양 붉은 빛을 향해 달린다. )


꼬박 하루를 달리고 다시 도로에 어둠이 내렸다. 12시간을 달렸지만 퍼스에 도착하기는 어려울 듯해서 York 근처 숙소에 예약을 하고 이메일로 밤 10시쯤에나 도착할 것 같다는 양해를 구했다. 문제는 94번 도로에서 Northam을 지나 120 국도로 내려가면서 어두운 시골길에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로등도 없는 길을 달렸다. 좁은 길, 거대한 나무가 어둠 속에서 팔을 뻗어 흔들거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이상한 동물 울음소리가가 너무 무서워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다.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크고 작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은하수였다.

(DSLR로 은하수를 찍었지만 실패했다.)

그 순간, 길을 잃어도 좋았다.

무수한 하얀 꽃 같은 은하수가 바다처럼 흘러내렸다.

하늘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았다.


시골마을로 들어서자 별빛이 사라졌다. 마을 가장자리 숙소에 들어서자 주인아주머니가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우리를 기다린 듯 피곤한 얼굴로 방 문을 열어주었다. 1시간 30분, 밤길을 더 달려 퍼스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지도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마을이 우리 가족에게 은하수를 선물했다.


에필로그


2020년 3월 호주 정부는 유람선 입항도 금지시킨 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주 경계지역 또한 봉쇄했다. 과일 채소, 그리고 꿀단지뿐만이 아닌 사람도 경계를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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