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어제와 같이 숨비소리길을 걷는다. 세화까지 35분 왕복 1시간이 넘는다. 어제와 같은 길이지만 오늘 하늘은 더 맑고 밝다. 바다는 더 푸르고 푸름을 뽐내고 있다. 리조트 앞,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에 맞추어 라인댄스를 하고 있다. 리조트 이름 아래 '액티브 명상, 제주 트레킹'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액티브 명상을 하는 중이리라. 웃음소리가 들린다. 다시 걷는다. 애견 동반 카페 앞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놀고 있다. 숨비소리길은 바쁘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꽃 향기가 훅 하고 들어왔다. 히야신스 향기인가 싶다. 제주로 떠나는 날까지 우리 집 화단에 보라색 히야신스가 꽁꽁 싸매고 꽃을 피우지 못했는데 이제 꽃이 피었나보다 하고 고개를 돌리니 유채밭이다. 유채꽃 향기가 나를 감싼다. 아침 이어서일까! 맑은 날씨 때문인가! 제주에서 유채꽃을 만나는 일이 처음이 아닌데 이런 향기는 처음이다. 봄의 선물이다.
어제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이다. 클로드 모네의 루앙대성당 그림처럼 같은 장소를 매일 남기고 싶다.
어제와 오늘의 바다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성산일출봉까지 다녀왔다. '환상 자전거 길!', 이름처럼 아름다운 길이다. 오래전 남편과 강원도 양양에서 고성까지 3일 동안 자전거로 길을 달렸다. 하루 5시간 이상 달리느라 힘들었지만 그 3일 이후 언제든 구석구석 익숙한 나의 길이 되었다. 오늘은 왕복 2시간 반, 28.32km를 달렸을 뿐인데 돌아오니 온 몸이 아프다. 시간이 지났음을 나이를 실감한다.
이름도 예쁜 종달리를 지나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가니 70대쯤으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지금은 저녁 준비 시간인데 하고 주저하다가 그냥 들어오라고 하신다. 깔끔한 반찬과 갈치조림이 차려졌다. 아주머니는 혼자 식당을 꾸리느라 지금은 저녁 준비할 시간인데 손님이 얌전히 먹을 것 같아서 들어오라 했다고 웃으신다. 혼자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힘드시지 않은가 했더니 이 정도는 일도 아니고 거뜬하다고 하셨다. 내가 머무는 하도리의 작은 집은 해녀 할머니가 주인이고 할머니의 사위가 집을 고치고 운영을 한다. 인심 좋은 운영자인 사위는 82세 장모님이 지금도 바다에 물일을 나가신다고 싱싱한 소라를 먹고 싶으면 말하라고 한다. 얌전한 손님을 고르는 갈치 집 사장님도 장모님 집을 수리하다 향나무 두 그루를 베었다고 사위를 야단치는 해녀 할머니도 오늘의 제주를 만든 여인이며 어머니이다.
성산일출봉을 둘러싼 유채밭은 어제 녹산로만큼 소란스러웠다. 어제보다 밝은 노란 유채꽃과 맑은 햇빛이 빛났다. 유채꽃 사이로 철없이 얼굴을 내미는 보라색 무꽃도 엄마와 사진 찍는 어린아이도 사랑스러웠다. 자전거로 달리는 28.32km 내내 유채꽃 향기가 맴돌았다. 하도리에 돌아와 별방진 성벽에 올랐다. 작은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사이로 저녁 햇빛에 반짝이는 하도리 유채꽃이 나를 반긴다. 성벽 위에도 성벽 아래 마을에도, 한라산 소주를 마시는 남편과 마주한 짙푸른 저녁 바다에서도 하루 종일 유채꽃 향기가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