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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계절에 나는 떠났다. (4월 제주 다섯째날)

2022년 4월 5일

by 은동 누나

대한민국의 모든 은동이들이 행복해지는 날까지!


세화리로 걷는다. 하늘이 흐리다. 유채꽃이 일렁인다. 옥빛 바다 위에 멀리 배가 보인다. 세화 바다가 분주하다 어제와 다른 분위기이다. 오늘은 5일, 세화장이 열렸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어제도 그제도 비어있던 장터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장으로 들어섰다. 옷도, 김치와 반찬, 해산물, 과일, 야채, 그리고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분식코너도 있다.

시장 바깥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걱정하던 장면을 보았다. 한 아주머니가 품에 작은 강아지를 안고 걷는다. 돌아보는 아주머니의 시선 끝, 바닥에 작은 상자, 그 안에 강아지 두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가슴이 철렁했다. 두 달이나 되었을까! 두려움에 고개를 떨구고 서로 의지하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내게 할아버지는 무료로 드립니다. 하고 말한다.


2년 전 가을, 3개월 추정, 안락사를 하루 앞두고 남편이 번쩍 안고 데려온 어린 은동이는 아팠다. 피부병과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들른 병원에서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꺼이꺼이 울었다. 은동이는 네모난 자기 자리를 떠나지도 못하고 밖에서는 무서워 걷지도 못했다. 작은 공간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고 차를 타면 머리를 구석에 박고 떨었다. 어린 은동이가 겪은 공포는 무엇이었을까! 오늘, 상자 속 어린 강아지들의 행복한 내일을 빌어본다. 짧은 목줄에 매이지 않고 사랑받는 가족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제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은동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지 고민했다. 제주로 오는 배의 Pet Room을 예약하고 은동이를 위해 마당이 있는 집을 어렵게 찾았지만 결국 데리고 오지 못했다. 여수까지 5 시간, 여수에서 제주까지 5시간 30분의 시간을 은동이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린 은동이의 어떤 기억이 상처로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늠름한 19kg 은동이에게 여전히 그 상처는 깊고 아프다.


장에서 구입한 햇감자와 천혜향을 두 손 가득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어제와 다른 711-2 버스에 오르니 든든한 체격의 젊은 운전사가 인사를 한다. 세화 바닷가에서 별방진으로 내가 아침에 걸어온 바닷길을 달린다. 창으로 푸른 파도가 일렁인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친절한 젊은 운전사가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처럼 퇴근 후에는 시를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점심을 먹고 '알뜨르 비행장'으로 떠났다. 1시간 30분 달려 도착한 '알뜨르 비행장'은 이름처럼 너른 벌판에 오래된 비행기 격납고가 있다. 1937년 중일전쟁 중 많은 전투기가 이곳에서 출격했다. 무고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으리라. 전쟁은 지금도 계속된다. 풀을 뒤집어쓴 격납고는 마치 역사의 무덤으로 보인다.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알뜨르 비행장 비행기 격납고 중 하나)


알뜨르 비행장에 차를 주차하고 자전거로 송악산까지 달렸다. 무밭에 수확이 한창이다. 30여분, 송악산에 오르니 멀리 초록과 노랑으로 가득한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바람이 시원하다. 송악산에서 내려와 다시 자전거로 달려 알뜨르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드문드문 보이던 관광객들도 사라진 텅 빈 벌판이 을씨년스럽다.




중문, 서귀포를 지나 집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유채꽃과 벚꽃이 가득하다. 어둠이 내려앉는 녹산로에 차도 사람도 없다. 꽃들이 주인이 되었다. 짙푸른 하늘에 시리도록 하얀 꽃잎이 하늘로 올랐다.

(저녁, 녹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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