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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계절에 나는 떠났다. (4월 제주 여섯째날)

2022년 4월 6일

by 은동 누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고 마음이 허전할 때는 벚꽃을 찾아 나선다.


제주의 여섯째 아침이 밝았다. 새벽형 인간인 나는 이른 아침 일어나 노트북을 켠다. 한 시간 남짓 글을 끄적이고 과일과 미숫가루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숨비소리길을 걷는다. 오늘 아침, 새벽에 잠드는 남편이 함께 산책하겠다고 일어났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둘이 아침 산책을 했다. 같은 길이지만 남편은 나와 다른 곳을 보고 푸르고 푸른 바다의 샛길을 찾아냈다.

(MJ 리조트 뒤편 바닷길)

초록색 이끼가 검은 돌과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다. 눈이 시리다.


오후에는 벚꽃을 찾아 올레길 18코스, 사라봉과 별도봉에 올랐다. 사라봉 입구에 차를 주차하니 하얀 꽃잎이 날린다. 계단을 오르고 일본 진지동굴이 숨어있다. 벚꽃이 만개했다. 동네 뒷산인 듯 힘들지 않고 정상까지 오른다. 검은 토끼와 하얀 토끼가 산책길에 풀을 뜯고 있다. 벚나무도 토끼들도 이 길의 주인이다.

(사라봉의 토끼들)


별도봉은 사라봉과 또 다른 모습이다.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며 바다를 보며 걷는 길은 감탄을 부른다. 이태리 친퀘테레의 길이 부럽지 않다. 멋진 길에 벚꽃은 계절의 선물이다.

(별도봉)


18코스를 걷고 벚꽃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삼성혈로 떠났다. 4,300여 년 전 제주 삼신인 신화가 살아있는 이곳 삼성혈은 봄이면 벚꽃 사진 명소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수백 년 된 고목이 인상적이다. 사당인 삼성전으로 들어가는 돌담과 문 입구 또한 고즈넉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 년 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다는 세 개의 지혈을 멀리서 보었다. 유생들이 학업에 정진하던 숭보당 건물 위로 벚꽃나무가 아름답다.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젊은 커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 서있다. 꽃도 그들도 예쁘다.

(삼성혈)


저녁에는 마을을 산책했다. 양쪽으로 밭이 있는 '낱물받길'이라는 예쁜 마을 길을 걸었다. 초록과 검은색이 선명하다. 조선 중종 1,510년에 구축한 별방진에 올라 석양을 보았다.

'Still Life!'

4,300년 전에도 1,510년 전에도 해는 지고 내일의 해는 떠오른다.

(별방진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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