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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계절에 나는 떠났다. (4월 제주 열여덟째날)

2022년 4월 18일

by 은동 누나

매일 저녁, 남편과 내일은 어디에 갈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한다. 어제밤, 남편은 천문연구원에 가서 전파망원경을 보면 어때? 하고 말했다. 거대한 접시모양 전파망원경도 보고 그곳에서 보는 바다도 멋진데!라는 말에 서귀포로 향했다.


한국천문연구원 탐라전파천문대에 도착하니 거대한 전파망원경이 우리를 반기는 듯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전파망원경은 렌즈는 없지만 커다란 접시로 천체에서 오는 전파 신호를 탐색해 소리나 그래프로 관측한다. 천체의 위치, 크기, 분자 조성 등을 알아낼 수 있다는 기특한 망원경이다.

(전파망원경)


한국 천문연구원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니 탐라대학교가 나온다. 탐라대학교 주소 옆에는 폐교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탐라대학교는 제주산업정보대학과 통합해서 제주국제대로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탐라대학교의 캠퍼스는 통합 후 사용하지 않아 사실상 폐교된 상태이다. 탐라대학교 부지는 서귀포시에서 약 400억 원에 사들였지만 넓은 부지를 개발하려는 사업자가 없어서 방치된 상태라고 한다.

(탐라대학교 )
(탐라대학교에서 보이는 서귀포)

천문과학 문화관 앞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탐라대학교 로고가 있는 기념탑이 있고 건물 안내표지판이 알아보기 힘든 형태로 방치되어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계단에 풀이 무성하다. 빨간색 출입금지 표시만 선명하다. 얼핏 보기에도 거대한 캠퍼스가 잠들어있다. 무성한 나무와 동백꽃이 잠든 캠퍼스의 주인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래된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탐라대학교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 옆, 알림판에 폐교전 마지막인 듯, 2011년 포스터들이 보인다. 11년 전, 젊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웃고 친구를 기다리고 내일을 꿈꾸었을 것이다. 'Children Of Men' 영화가 현실이 되어, 어느 날, 아이들이 사라지고 내일을 꿈꿀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탐라대학교를 떠나 평화로를 달린다. 초록이 가득한 아름다운 길에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이시돌 목장을 지나고 금악리를 지나고 명월리를 지나 여전히 언제나 아름다운 협재 바다로 향한다.


협재해수욕장에 차를 주차하고 자전거로 제주 서쪽 바다를 달리기로 했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따라 달린다. 금능해수욕장을 지나고 월령리 선인장 마을을 지난다. 판포포구를 지나며 바다 위의 풍력발전기를 따라 달린다. 차귀도 섬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수월봉을 향해 달린다. 오늘도 오름에 올랐다. 수월봉을 자전거를 끌고 두 다리로 걸어 오른다. 힘들게 오른 수월봉 전망대에서 달리는 내리막 길은 수월봉 지질트레일로 이어진다. 화산재 지층이 겹겹이 쌓인 절벽을 따라 달린다. 저녁 햇살에 바다가 반짝인다.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
(바당길)

차귀도가 멀어지고 다시 바다 위 하얀 풍력발전기를 따라 달리니 멀리 비양도와 협재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아름답지만 힘들다. 앞서 달리는 남편이 뒤를 돌아본다. 1시간을 더 달려 한림공원을 지나 드디어 협재 바다로 돌아왔다. 2시간 40분 37.13km를 달렸다. 금능해수욕장의 금능 샌드위치 가게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으며 아름다운 협재 바다의 일몰을 기다린다.



칠레 북쪽 끝 내륙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세계 최대의 전파망원경 간섭계(ALMA) 사이트가 있다. 2014년, 태어나고 있는 별 HL 타우를 촬영했다.

Big Bang 38 만년 후, 우주공간이 생겼다. 3억년 이후 별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100년, 200년, 천년, 지구별의 미래가 무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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