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 성당으로 걷는다. 부활절 아침이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싱그럽다. 바닷길을 걸어 성당을 가는 일은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카톡이 분주하다. 예쁜 이모티콘으로 부활 축하 메시지가 보인다. 1시간 일찍 출발했지만 놀멍 쉬멍 걸었더니 30분이 지났다. 급한 마음에 세화 마을로 들어가 초등학교를 지나고 게이트볼 구장을 지났는데 지도와 반대로 걸어가고 있다. 큰길로 나가 버스정류장에 정차한 버스기사님께 세화고등학교를 물었다. '어디요?' '세화 고등학교 건너 세화 성당 가는데요!' 기사님은 저리로 가라고 손으로 가리킨다. 마음이 급해 그 길을 따라 걷는데 뒤에서 버스 소리가 들린다. '타세요!' 내가 답답해 보였나 보다. 버스에 오르는 내게 그냥 타라고 말한다. 한 정거장쯤 달려 버스 정류장도 아닌 건널목에 나를 내려주었다. 부활절 아침, 감사한 일이다!
작은 성당이 좋다. 지난번 미사 때도 30명쯤으로 가득 차 보이는 성당이다. 성당 입구, 책상 위에 부활 축하라고 쓰여있는 갈색 봉투가 차곡차곡 줄 서있다. 미사가 시작되고 오르간이 울리고 신부님이 성당 입구로 들어오신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부활 선물로 받은 갈색 봉투 안에 계란 세알, 초록 쑥떡, 두유 하나가 있다.
(세화 성당)
성당을 나와 평대 사거리에서 1112 비자림 도로를 지나 큰지그리오름으로 달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한 언니가 꼭 다녀오라고 추천한 오름이다. 교래 자연휴양림에 차를 세우고 아담한 초가집 매표소에서 1000원 입장료를 내고 곶자왈 숲으로 들어갔다. 곶자왈은 함몰지 와 돌출지가 불연속적으로 형성된 지형의 영향으로 난대수종과 온대수종이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과 다양한 식물상을 볼 수 있다. 한 발을 들어섰을 뿐인데 초록으로 가득한 거대한 숲이 하늘을 가린다. 700m 걸어가니 갈림길이다. 3,400m 오름을 선택했다. 곧장 깊은 원시림에 둘러싸인다. 꼬불꼬불 길은 계속되고 때죽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등이 거대한 바위를 뚫고 하늘을 가린다. 1시간 남짓 곶자왈을 걷는다. 비자림의 분주함은 없다. 초록으로 가득한 숲을 가슴 가득 담는다. 나의 숲이다. 초록의 시간이다. 영화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숲을 걷고 걷다 보면 갑자기 하늘 높이 뻗은 편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편백나무 숲을 통과해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데크의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본다.오름들과 어우러진 위풍당당한 한라산에서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면 교래 곶자왈의 숲이 한없이 펼쳐진다. 큰지그리오름 정상에서 곶자왈을 바라보며 다시 편백나무 숲으로 그리고 초록의 곶자왈로 내려간다.
(큰지그리오름 정상, 한라산과 오름들)
8.45km, 3시간의 길을 걸었다. 곶자왈을 빠져나오는데 빽빽한 숲 사이로 소들이 지나간다.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큰지그리오름에서 나와 다시 용눈이오름으로 향했다. 제주 오름의 여왕인 용눈이오름은 자연휴식년제로 오를 수 없다. 용눈이오름을 지나 다랑쉬오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 아끈다랑쉬에 올랐다. 10여분 올랐을까! 정상의 억새밭이 펼쳐진다. 억새를 뚫고 나가니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천천히 좁은 길을 따라 분화구로 내려갔다 올라온다. 바다와 성산일출봉도 보이고 용눈이오름의 아름다운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고 포근한 저녁 햇살이 억새에 반짝인다. 작은 다랑쉬'라는 뜻을 가진 아끈다랑쉬 오름의 작은 정상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아끈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보는 용눈이오름)
집으로 돌아와 불을 피웠다. 세화장에서 사 온 밤과 고구마를 굽는다. 나무가 소리를 내며 빨간 불꽃을 피운다. 어둠처럼 까만 고양이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사료를 먹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며 나를 본다. 맛집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다. 큰지그리오름에서 만난 착하고 어진 소의 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