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리로 걷는다. 어제의 바람은 아니지만 여전히 바람은 하얀 파도를 일으킨다. 날은 흐리고 만조인지 작은 돌섬들이 보이지 않다. 카페 옆 유채밭의 꽃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숙인다. 꽃이 듬성듬성 보이지 않는다. 찬란하던 노란 꽃은 어제의 바람과 비로 모습을 감추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걷지만 다르다.
세화 바다는 바쁘다. 오늘은 15일, 5일장이 열린다. 장을 돌아보며 천혜향과 방울토마토, 고구마, 밤을 두 손 가득 들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난번 강아지들을 찾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찾을 수 없었다. 모자와 옷, 과일과 야채, 없는 것이 없다. 그중 가장 활기 있는 생선가게 앞에서 문어를 살까 하고 망설였다.
(세화 오일장)
오일장에서 돌아오는길에 하늘이 맑아지고 해가 비춘다. 바다는 아침과 또 다르다.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안돌 오름'으로 떠났다. 안돌 오름은 송당리에 있는 오름이다. '안돌 오름'보다는 '비밀의 숲'이 스냅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지만 과감히 비밀의 숲을 지나 300m 걸어가면 안돌오름 입구 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안돌오름 초입에 쭉쭉 뻗은 나무들의 군락이 사진 명소보다 못하지 않다. 그리고 천천히 오름을 오른다.
(안돌 오름 입구)
송당리에는 오름이 많다. 그저 많은 오름 중 하나라고 큰 기대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억새와 봄을 알리는 야생화들이 고개를 내민다. 병아리꽃나무는 봄에 피는 하얀색 꽃을 보면 마치 갓봄에 태어난 귀엽고 앙증맞은 병아리가 연상된다 하여 불리는 나무이름이다. 바람에 하늘 거리는 꽃잎이 봄바람에 놀러 나온 아기 병아리 모습이다. 제비가 봄이 되어 돌아온다는 음력 삼월 삼짇날 무렵 꽃을 피운다는 보라색 알록제비꽃과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도 반갑다. 보라색 할미꽃이 이제 막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본다.
(병아리꽃나무) (할미꽃)
(복수초)
봄꽃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능선길을 20여분 올랐을까! 오름의 정상이다. 분화구가 있지만 내려갈 수 없고 정상에서 오른쪽 길로 걸어가니 철쭉 군락지이다. 이제 막 피우기 시작한 철쭉은 아마도 곧 만개해 붉은 꽃으로 가득할 것이다. 철쭉동산에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좁은 길로 내려갔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가시나무를 쳐내며 내려가니 갑자기 푸른 들판이 나온다. 들판 맞은편 오름이 밧돌 오름이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 안쪽과 바깥쪽을 뜻하는 듯 마치 형제 오름인 듯하다. 들판을 걷고 다시 안돌 오름으로 올랐다. 밧돌 오름과 마주한 안돌오름 길은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다시 오른 오름의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송당리의 오름들이 펼쳐진다. 다랑쉬, 높은 오름, 백약이 등이 한눈에 담아진다. 형제 오름은 평범하다. 그저 완만한 능선을 오르고 내려올 뿐이데 넉넉한 마음을 내어준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 사이 길)
안돌 오름에서 내려와 또 다른 오름을 찾아 떠났다. 아쉬웠다. 동 검은이 오름 입구를 찾다가 맞은편 백약이오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운이 좋으면 엉덩이 하얀 노루를 볼 수 있다는 백약이오름의 설명이 떠오르고 검은이오름을 뒤로한 채 백약이오름으로 노루를 찾아 올랐다. 안돌 오름보다는 규모가 큰 백약이오름의 능선을 걸어 정상에 오르자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분화구 둘레길을 걸었다. 손에 잡힐 듯 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오름 입구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젊은 커플이 반사판까지 동원해 사진을 찍고 있다. 젊음은 예쁘다. 그러나 노루가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른 봄, 눈과 얼음을 뚫고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행복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송당의 삼나무 숲 사이 작고 평범한 두 개의 오름! 안과 바깥의 능선길이 마주 하는 곳에 행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