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월요일, 1박 2일 일산에 다녀왔다. 제주 오기 전, 어깨 수술하신 엄마의 외래 검진 예약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 비행기로 도착한 서울은 벚꽃이 만개하고 여전히 바쁜 일상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은동이가 오래도록 엉덩이 춤을 추며 나를 반겼다.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라고 온몸으로 말한다. 그러나 집에서 은동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재활병원으로 가서 엄마를 모시고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11일 만에 만난 엄마는 내게 '11일이 11년 같구나!"' 하고 말씀하신다.
여의도를 지나는데 국회의사당의 벚꽃이 보인다. 수서의 삼성병원 근처 복집에서 점심을 먹고 병원에 도착해 X-ray를 찍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수술하신 교수님이 코로나 확진으로 오늘은 진료할 수 없다며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란다. 정형외과 대기실에는 앉을자리도 없다. 한참을 기다려 만난 의사 선생님은 수술이 잘 아물고 있다고 다음 예약을 잡으라고 두 마디를 하고 자리를 떴다. 다시 운동치료에 관한 설명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2달 약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와 약국에 들러 약을 샀다. 병원에서만 3시간이 걸렸다. 퇴근 시간의 강남을 겨우 빠져나오고 차들이 꼼짝 못하고 멈춰선 88 도로에서 해가 졌다. 해지는한강을 내려다보니 하도리 바다가 생각났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11일간 병원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동차 창문을 내리자 철썩하고 파도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쁜 딸이다.
12일 화요일 오후 비행기는 제주의 짙은 안개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었다. 제주에 도착하니 '사모님, 혹시 서울에서 오셨나요?' 하고 낯익은 소리가 들린다. 내가 없는 2일간 남편은 바빴다. 후배도 만나고 차를 정비하고 세화 시내에서 머리도 자르고 세화를 접수했단다. 남편과 세화의 마구간이라는 음식점에서 술을 마셨다. 안개 가득한 한적한 해안도로를 달려 하도리 집으로 돌아왔다.
13일, 수요일 제주 열세 번째 날이 밝았다.
세화로 걷는다. 어제의 안개는 사라졌다. 구름 속에서 해가 인사를 한다. 바다는 더 푸르다. 짠내 나지만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오늘의 세화 바다를 사진찍고,지난주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바다사진과 안부를 전했다. 세화의 마트에서 고양이 사료와 치즈를 샀다. 검은 쓰레기봉투를 물고 집으로 달려오다 나를 보고 놀라던 아기 고양이가 생각났다.
(13일 아침 세화 바다)
집 근처 'Bellon'이라는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유채밭의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노란 물결이 아름답다.
자전거를 달려 지미봉으로 향했다. 거센 바람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내일 비를 예보한 날씨는 점점 어두워진다. 바다의 파도가 거세다. 거센 파도에 해녀들이 보인다. 빨간 테왁이 둥둥 떠있다. 종달리를 지나 갈치집을 지나고 밭길을 달린다. 자전거를 세우고 지미봉에 올랐다. 30여분 계단을 오르고 올라 정상에 올랐지만 짙은 안개만 보였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품고 싶을 때 가는 오름'이라는 지미봉은 맑은 날 올라야 한다. 지미봉을 내려와 둘레길을 걷는다. 벚꽃이 지고 연둣빛 잎이 아름답다. 초록의 숲이다.
(지미봉 둘레길)
매년, 벚꽃이 피면 새벽에 호수공원을 걸었다. 이른 햇빛을 담은 꽃은 오후의 꽃과 다르다. 꽃이 진 자리의 잎은 초록이다. 어린 초록이 자라 어른이 된다. 저녁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늦게 민박 사장님과 조개를 따러 바다에 나가려던 남편은 거센 바람소리에 문을 닫았다. 괜찮다! 내일의 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