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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계절에 나는 떠났다. (4월 제주 열번째날)

2022년 4월 10일

by 은동 누나

고사리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


무릎이 와글와글하다. 어제 무리한 듯 온몸이 아프다. 천천히 숨비소리길을 걷는다. 매일 사진 찍는 장소에 자동차가 보인다. 자동차 위에는 초록 우산이 보이고 강아지와 두 사람이 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나비 머리끈을 한 대형 강아지는 어떻게 차 위로 올라갔을까? 나는 인사를 하고 제주 한달살이 글을 쓰는데 사진을 글에 실어도 될까요? 하고 물었다. 여자가 흔쾌히 수락을 한다. 유쾌하고 예쁜 커플이다. 5년 전, 3일을 달려 도착한 울룰루! 전 세계의 젊은 커플들이 자동차 위에 앉아 혹은 누워 울루루의 일몰을 즐기고 있었다. 젊은 그들이 부러웠다.


아침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남편이 오늘은 동네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을까 하고 말한다. 작은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있는데 민박 사장님이 들른다. 함께 커피를 마시며 동네 이야기를 들었다. 별방진 성벽 안쪽은 새로 집을 지을 수 없고 제주도에서 관리한다. 마을 입구에서 마주치는 이상한 연못은 오래전부터 마을에 불이 나는 비상사태일 때 불을 끄는 역할을 한다고 몇 년 전 그 연못을 메꾸고 길을 만들고 좋아했는데 마을에 홍수가 나서 다시 복원했다고 하며 옛사람들의 지혜를 깨달았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남편과 동네 산책을 나섰다. 마을 안쪽 옛 성벽이 보인다. 노란 유채와 무꽃이 가득한 밭 한 구석에 오래된 성벽이 덩그러니 서있다.



새마을 사업 공덕비 뒤로 빨래가 펄럭인다. 제주 무를 가득 담은 거대한 자루가 줄지어 서있다. 다시 노란 밭길로 들어선다. 하얀 완두콩 꽃이 얼굴을 내민다.


이름도 예쁜 종달리의 갈치조림 음식점으로 들어서니 여전히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지금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인데' 하고 말한다. 남편이 '지난번처럼 얌전히 먹고 갈게요' 하고 말하자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 한다. 깔끔한 반찬이 차려졌다.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열자 휘익! 하고 바람소리가 들린다. 아주머니는 밖을 내다보며 '너무 건조해서 큰일이네! 비가 좀 와야 하는데' 하고 말한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며 비가 와야 고사리가 잘 자란다 하며 '고사리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라고 말했다. 제주에서 열흘간 빛나는 햇살에 너무 만족하며 감사하던 나는 갑자기 미안스러웠다.


점심을 먹고 아주머니께 또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종달리를 걸었다. 종달리는 하도리보다 큰 마을이다. 마을의 작은 책방에 들러 오랜만에 책을 뒤적이고 딸을 위한 엽서를 샀다. 마을에 서점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방송에서 누군가 '책이 책을 부른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원하는 책을 클릭 한 번으로 아침에 구입하면 저녁에 배송 가능한 세상이지만 수고롭게 두 발로 책방에 들러 줄지어 선 책을 들여다보면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작은 책방이 있었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성산포 성당의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저녁 햇살이 바다 위로 반짝인다. 낮은 성당에 들어서니 노래소리가 들린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이슬을 먹고 자라는 것이 고사리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초록이, 생명이 이슬을 먹고 하루가 새롭게 자란다. 새벽이슬이 반갑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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