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찬란한 계절에 나는 떠났다. (4월 제주 열네번째날)

2022년 4월 14일

by 은동 누나

바람 불어오는 날에 바다로 나간다.


거센 바람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을 삼켜버릴 듯한 바람이 계속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려니 한 걸음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제주의 바람은 놀랍다. 바람을 뚫고 별방진 성벽으로 걸었다. 파도가 방파제를 집어삼킬 듯 돌진한다. 하얀 파도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세화리를 향해 걸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카페를 지나고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에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오늘의 짧지만 강렬한 산책은 끝났다.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제주에서 비가 온다면? 비자림으로 가야 한다! 누군가 말했다.

점심을 먹고 비자림으로 향했다. 10년 전쯤인가 오래전 비자림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산도 나무도 귀찮다고 투덜대는 아이들과 빽빽한 나무 숲을 걸었다. 토토로가 나올 것 같은 숲의 기억이 좋았다. 그러나 오늘의 비자림은 다르다. 큰 규모의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들과 사람들, 주차장을 울려대는 이상한 노래가 어색하다. 새천년 비자림을 향해 사람들이 줄지어 걷는다. 잔디광장을 지나 숲길 입구로 들어선다. 비자나무는 언제나 푸른 바늘잎나무다. 천년의 세월이 녹아든 숲에서 벼락 맞은 나무부터 아름드리나무까지 다양한 비자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신비로운 숲의 여유와 넉넉함을 함께 하기에는 너무 분주했다. 길을 막고 오래도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바쁘다. 너무 아쉬웠다.



토토로의 숲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해 가을 머체왓 숲길을 걸었다. 울창하고 빽빽한 다채로운 군락지가 끊임없이 다가왔다, 제주 원시림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너무 조용하고 인적 없는 숲이 무섭기도 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그 숲도 어색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차들로 가득한 주차장, 줄지어 걷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숲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생각이 터무니없는 기우이기를 바란다.


비자림에서 성산일출봉으로 달렸다. 다시 바람이 분다. 차가 바람에 흔들린다. 파도를 보고 싶었다. 바람에 맞서는 파도를 보기 위해 달렸다. 성산일출봉 입구가 오히려 한가하다. 거센 바람에 걷기도 쉽지 않다. 걸어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 왼쪽 바다를 보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성난 파도가 줄지어 온다.

(성산일출봉)

해녀공연을 하는 바다로 계단을 내려갔다. 눈앞에 달려오는 파도를 보았다. 파도를 향해 걸었다.


(성산일출봉 해녀공연장)




제주까지 짊어지고 온 나의 어리석은 근심을 바람과 파도에 실어 보냈다.

제주는 좋다. 비가 내리는 날도,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날도!





keyword
이전 11화찬란한 계절에 나는 떠났다. (4월 제주 열세번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