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일어나 민박집 사장님이 주신 무와 얼린 보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9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서울은 여전히 바쁘다. 집에 도착해서 은동이의 격렬한 엉덩이 춤 인사를 받고 차를 가지고 나왔다. 엄마가 재활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다. 재활병원에서 3주를 지내신 엄마는 다른 협력병원으로 옮기려 했지만 더 이상 병원생활을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제주 한달살이가 일주일 남았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병원에서 치료받으시기를 원했지만 어쨌든 집으로 가시겠다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재활병원에 도착하니 엄마는 말끔하게 옷을 입고 짐을 싸고 기다리신다. 원장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병원비 정산을 하고 엄마를 모시고 나와 불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주인도 없이 꽃을 피운 기특한 화분을 둘러보시고 나는 청소하고 냉장고를 채우고 엄마가 드실 음식을 만들었다. 85세의 엄마는 내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신다. 나의 살림 사는 모습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유치원을 나온 엄마를 한 번도 이길 수 없다.
23일 토요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은동이를 산책시켰다. 정발산에서 다람쥐를 본 은동이는 하늘까지 뛰었고 나는 은동이에게 매달려 걸었다. 엄마 집으로 가서 아침을 챙겨드리고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간다. 나의 친구의 딸이고 나의 아들의 오랜 친구가 결혼을 한다. 30년 전 돌 잔칫날, 예쁜 한복을 입고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던 아기는 눈부신 신부가 되어 듬직한 신랑의 손을 잡고 웃는다.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아름다운 신랑 신부에게 더할 수 없는 축복을 기도한다. 결혼식이 2부로 진행될 때 신부와 신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 아들과 커피를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데이케어 센터에서 엄마를 돌보아준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그리고 김포공항으로 제주로 돌아왔다. 제주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오신 아주머니!' 하고 남편이 다가온다. 안개 가득한 도로를 달려 세화리 마구간에서 음식을 포장하고 하도리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주인공 신부의 선물, 와인을 마신다. 남편은 내가 없는 제주에서 다시 한라산 영실에 올라 남벽 코스를 걸었다.탐방통제시간을 15분 지나 오르지 못했던 길, 백록담을 앞에 두고 남벽분기점으로 걷는 길은 한 폭의 동양화의 주인공이 되는 아름다운 길이다. 부러울 따름이다.
(백록담 남벽분기점 가는 길)
24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고양이 사료가 떨어졌다.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세화리로 숨비소리길을 달린다. 하나로마트에서 사료를 사고 배낭에 넣고 돌아왔다. 늦은 점심을 먹고 종달리를 지나 머체왓 숲길로 향했다. 지난해 가을 머체왓 소롱콧길을 걸으며 남편은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말했다. 골프장이 들어설 위기를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막아내고 지켜낸 제주의 원시림을 봄의 모습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머체왓 숲길로 시작한다. 목장지대를 지나고 머체왓이라는 이름답게 돌과 나무가 우거진 원시림으로 들어선다. 구실잣밤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제밤낭기원 쉼터를 지나고 애덕나무 군락지를 지나며 야생화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드넓은 초원과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머체왓 숲길 초원)
다시 편백나무 삼나무 가득한 길을 지나 소롱콧길로 들어선다. 소롱콧길에는 주민들의 옛 집터가 남아있다. 초록색 이끼가 선명한 검은 돌담이 삶의 흔적을 말한다. 돌담을 돌아 돌아 걸으며 그 흔적을 떠올린다. 마지막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 분홍색 꽃들이 피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키 큰 철쭉이 숲을 환하게 빛낸다. 머체왓 숲길은 끝없는 변주가 이어진다.
(소롱콧길 옛집터)
(소롱콧길 계곡의 철쭉)
머체왓 숲길에서 성산일출봉으로 달렸다. 성산에서 종달리 해안도로를 달려 해지는 바다를 마주하고 하도리로 돌아왔다. 고양이 밥그릇을 가득 채운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