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의 이야기
선찬이는 연습장 한 권에
모든 과목 노트 정리를 다 하는 아이다.
담임 과목인 과학만 빼고.
다른 선생님한테서 선찬이의 저런 비리를 듣고
"넌... 주거쓰~~~!" 하면서
교실로 가서 나무랄라치면
"선생님..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세요~~~!!!'"하면서
애교를 떠는 바람에 화를 못 내고 만다.
우리 반에서 젤로 잘 삐지고
게다가 건뜻 하면 울기까지 해서 놀림을 받지만
놀려도 웃는 아이가 바로 선찬이다.
작은 눈인데 눈썹이 쌔카매서
웃으면 눈은 안 보이고 속눈썹만 보인다.
그 웃음이 참 좋다.
공부 시간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선찬이가
농구나 축구할 땐 운동장을 날아다닌다.
그때만 잠시(!) 선찬이 팬클럽이 형성된다.
중1인데 아직도 천진난만해서
내 앞에서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율동을 한다.
심지어는 집에 가는 길에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춤을 추기도 한다.
오늘 아침엔 눈싸움을 하는데,
장갑이 없는 친구에게
서슴없이 장갑을 한쪽 빼준다.
철없고, 놀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여리고
그러면서 정 많은
난 우리 선찬이가 좋다.
그런 선찬이가 사랑에 빠졌다.
빼빼로 데이에 우리 모두 알게 되었다.
'선찬이가 은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게 하는
결정적인 증거!
선찬이의 그녀는 누굴까?
에어로빅 연습을 하는데
저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얼마나 예쁘고 웃음이 나던지...
꽉 잡은 손이 아니라,
차마 못 잡은 왼쪽이 은희의 손이다.
선찬이가 좋아하는 은희는
우리 학교에서 아주 인기가 많다.
새침데기처럼 생겨서
수업 시간엔 꼼짝 않고 수업만 듣는다,
것도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그런데 놀이 시간만 되면
벌렁벌렁 넘어지질 않나,
깜(고함을 우리 반 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한다)을 지르질 않나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논다.
(이건 비밀인데...)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가장 나이 드신 도덕 선생님까지
모두 은희의 팬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학년에서 가장 멋있는 남학생이
은희에게 좋아한다고 편지를 줬다.
2층을 떠들썩하게 만든 빅뉴스였다.
우리 선찬이의 심정이 어떨까 무척 궁금했는데
11월 28일 선찬이의 일기
승철이 형이 서은희한테 고백을 했다.ㅋㅋ
어떻게 될까? 받아줄까?
선배가 후배를 좋아하다니...
승철이 형이 서은희한테 고백한 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
난 우리 선찬이의 첫사랑이 사랑스럽다.
딱! 14살짜리 사랑.
첫눈처럼 순수한 사랑.
첫눈처럼 얼마 가지 않아 사라져 버릴 사랑.
그렇지만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설레게 할
그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