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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Sep 19. 2021

드라마<미스 함무라비> 원작자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JTBC 드라마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미스 함무라비>의 원작자이자 극본을 써서 화제가 된 문유석 판사.

그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 유감'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나는 문유석 판사가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로 유명하기 전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드릴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가 아버지를 위해서 고른 책이 바로 <개인주의자 선언>이었다. 아버지는 주로 철학책이나 고전 혹은 중국 관련 고서 등을 읽으시기에 고민 끝에 고른 책이기도 했다.
 

 책 표지를 넘기면 문유석 판사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현직 판사라는 기본적인 타이틀 외에 그에 대한 소개가 흥미롭다.


  현직 판사인 문유석 판사는 <개인주의자 선언>을 내기 이전에 이미 <미스 함무라비> 외에도 <판사 유감> 등의 책을 쓴 이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문유석'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대뜸 <개인주의자 선언>을 고른 첫 번째 이유는 문유석 판사가 자신을 소개하는 글귀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유석 저자 소개
현 서울 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소년 시절부터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개인주의자였다.

요령껏 사회생활을 잘해나가는 편이지만 잔을 돌려가며 왁자지껄 먹고 마시는 회식자리를 힘들어하고, 눈치와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집단주의적 문화가 한국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또한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적 연대의식이 조화를 이루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며'라며 '문유석'이라는 친필 서명과 함께 쓰여있는 글귀도 좋았다.


  나는 책을 사기 전에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더라도 책의 서문이나 앞부분을 조금 읽어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그 책을 쓴 이가 누구인지 잘 몰라도 산다. 그것은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첫눈에 반하는 책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유명인사의 추천사에 가까운 소감문이 적혀있다. 근데 나는 책을 살 때는 그것도 살펴보지 않고 단지 저자 소개와 책의 목차 그리고 도입부에 담긴 저자의 생각에 매혹되어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요즘 평소와 다른 환경에 있으신 아버지에게도 공감을 얻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좋은 글은 자신의 속내를 포장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글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문유석 판사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밝히고 있었다. 어떤 것은 숨기고 싶은 얼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과 사유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JTBC에서 월화드라마로 방송된 <미스 함무라비>현직 판사이자 원작자인 문유석 판사가 극본도 썼다. 그래서 여타 법정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판사들의 현실적인 고민,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도 1회인가 방송에서 주인공인 임바른(김명수 분/ 인피니트의 엘)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고 있었던 책이 <개인주의자 선언>이었다. 그때 책의 앞부분이 내레이션으로 소개된다.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도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양옆에 사람이 앉는 게 싫어서 구석자리를 찾아 맨 앞칸까지 가곤 한다. (중략)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무슨 근거로? 가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주인공 임바른(인피니트의 엘/ 김명수 분)은 문유석 판사의 페르소나다. 극 중 판사로 나오는 임바른 역시 시니컬하며 사건이나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개인주의자이다. 그에 반해 초임 판사로 나오는 박차오름(고아라 분)은 매 사안을 자신의 일처럼 뜨겁게 대한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연출: 곽정환

출연: 고아라, 김명수, 성동일, 류덕환, 이엘리야, 이태성, 김영옥, 이원종, 고인범, 박순천, 이철민, 안내상, 차수연, 김홍파, 차순배, 이칸희

방송: 2018, JTBC



  하지만 책을 읽노라면 현재는 부장판사인 문유석 판사가 현실에서는 극 중 한 세상 부장판사(성동일 분)의 위치이지만 임바른(김명수 분)이 갖고 있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와 박차오름(고아라 분)이 갖고 있는 정의로움을 모두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문 칼럼으로 썼던 '개천의 용들은 멸종되는가'에 대한 격론에 대한 소회를 담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아버지는 <개인주의자 선언>을 건네받자마자 다 읽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선물로 드렸던 책이건만 나도 읽고 다시 돌려드리기 위해 집으로 갖고 왔다.


 이 책을 다 읽은 아버지께서는 저자인 문유석 판사가  "책을 참 많이 읽은 분인 것 같다"라고 하셨다. 엄청난 칭찬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러 가지로 편치 않으신 아버지께서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으셨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짐작해본다.


책 속에 밑줄 긋기

11.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중략)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분명히 내 일이 아닌데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들이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 순간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책없이 줄줄 흐르는 순간들이 있다.

14.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25.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45.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55.
그런 점에서 재벌 2세 신데렐라 놀음만 반복하는 대중예술 창작자들, 외모 차별 언사를 거리낌 없이 내뱉는 자들이야말로 사회통합을 해치는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이 아닐까. 부자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직업,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을 멋지게 그려내는 예술가들이야말로 실제로 사회를 바꾸는 혁명가들이다.

57.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61.
내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중략)
일본 사회에 매이지 않은 채 로마에 일 년, 크레다 텀에 일 년, 세계를 뿌리 없는 부평초처럼 자유롭게 떠돌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소설과 소소하고 유치한 수필을 끝도 없이 써대던 예전의 하루키다.

64.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 중인 아주머니의 하소연은 길고 길었다. (중략)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게 절을 꾸벅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쳐다보니, 아주머니가 말씀하시길 그동안 이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 검찰, 법원을 여러 번 들락거렸는데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것은 내가 처음이라는 것이다.(중략)
난 그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건 원래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과분한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을 리 없다.

93.
'개천과 강의 구분도, 용과 미꾸라지의 구분도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냐'는 등의 반응이었다.
부끄러웠다. 감히 내가 무슨 용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내가 칼럼을 쓸 때 가장 울컥하며 써 내려갔던 것은 요약하면 결국 '서민 가정 출신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부잣집애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빼앗기는 건 부당하다'는 부분이었다.(중략)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뿐 아니라 다수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사실 더 중요하다. 또한 사회에는 공부 잘하는 것 외에 다양한 재능이 필요하다.


저자: 문유석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5.09.23.


* 이 책을 다시 읽고 나니,


 솔직히 말하자면 중반 이후보다는 앞부분이 더 좋다는 것.
물론 중반부에도 울컥하게 하고 감동적인 글도 많았다.


 또한 신문 칼럼을 수정하고 내용을 추가한 글이나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주제도 많았다. 하지만 후반부 글 중에는 다 공감하거나 동의하게 되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는 것.


 그래도 아버지 말씀대로 책도 많이 읽고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문학을 좋아하는 글을 쓰는 판사라는 점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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